제주 서귀포시는 행정ㆍ지리학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우리나라 최남단 도시라는 점이 첫째이다.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다. 가장 먼저 봄을 맞고 가장 늦게 가을을 보낸다.
섬에 들어있는 도시라 작다고 생각하기 쉽지만서 귀포시는 크다. 전체 면적은 254.57㎢. 광역시 이상을 제외한 일반 시 중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넓다.
백록담을 포함한 한라산 남서쪽의 너른 산록과 서쪽의 상예동에서 동쪽의 하효동에 이르는 긴 해안선(직선거리 약 25㎞)이 모두 시에 포함된다.
그러나 서귀포를 서귀포답게 하는 것은 이런 물리적 ‘기록’이 아니다. 빼어난 아름다움이다.
화산에서 솟아난 현무암이 땅거죽의 90% 이상을 덮고 있는 서귀포는 그 울퉁불퉁한 돌의 모양새만큼 기이한 풍광을 자랑한다.
‘제주도 속의 한 도시’라는 선입견을 갖고 주마간산식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눈여겨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흔히 ‘서귀포 70리’라고 한다. 남인수씨가 부른 같은 제목의 옛 노래(조명암작사, 박시춘 작곡) 덕분일까. 노래 이전의 기록이 있다.
조선때 지어진 탐라지(1653년)에는 ‘정의현(旌義縣ㆍ지금의 성읍)의 서쪽 70리 지점에 서귀포가 있다’고 적혀있다.
서귀포 사람들의 견해는 또 다르다. 서귀포 해안선의 길이가 70리라는 이야기도 있고 서귀포 앞에 떠 있는 4개의 섬을 연결하면 70리라는 주장도 있다.
해석이 구구하기 때문일까. ‘70리’는 단순한 거리적 개념을 넘어서는 것 같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상향. 모든 사람의 꿈을 의미하는 수치로 다가온다.
‘이상향 70리’의 탐구는 해안선에서 시작한다. 뜨거운 용암이 찬 바닷물과 섞이면서 만들어진 해안선은 거칠다. 사나운 짐승이 마구 할퀴어 놓은 모습이다. 그래서 신비롭다.
압권은 중문동 대포해안의 주상절리대이다. 이 곳 사람들은 지삿개 해안이라 부른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으면서 돌 내부가 결정화했다가 밖으로 드러난 것으로 전국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삿개의 주상절리는 평범하지 않다.
돌의 색깔은 섬뜩하리만치 검다. 검은 돌은 육각기둥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자로잰 듯 정교하다. 수만 개의 기둥이 빼곡하게 이어져 있다. 정확하게 위에서 내려다 보면 거대한 벌집의 형상이다.
바다에 가까운 것일 수록 파도에 쓸려 낮아졌다. 그래서 바다로 들어가는 계단처럼 드리워져 있다. 계단의 끝에는 언제나 낚시꾼이 있다. 고기잡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검은 바위를 때리는 푸른 파도만 바라보아도 좋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지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지삿개는 이제 서귀포 여행의 1순위가 됐다. 사람이 많이 몰리자 시에서 바위에 내려서는 것을 금지하고 대신 전망대를 설치했다.
해안선 제2경은 외돌개이다. 20㎙ 높이의 기둥바위로 뭍과 떨어져 외롭게 서있다고 해서 외돌개란 이름이 붙었다. 장군석으로도 불린다.
고려말 제주도를 침략했던 오랑캐가 최영 장군의 군대에 밀려 외돌개 앞 범섬까지 달아났다. 최영장군은 외돌개를 거대한 장수로 치장했고 오랑캐는 그 기세에 눌려 모두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귀포의 해안은 모두 검은 색일까. 유일하게 흰 곳이 있다. 중문해수욕장이다.
중문관광단지에 들어있는 이 해수욕장은 그래서 분위기가 독특하다. 활처럼 굽은 긴 백사장은 검은 절벽의 호위를 받고 있다. 사시사철 윈드서핑의 오색물결이 파도를 가른다.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면 폭포가 있다. 천제연, 천지연, 정방, 소정방, 엉또폭포등 제주를 대표하는 5개의 폭포가 모두 서귀포시에 있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천지연폭포. 서귀포항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약 10분쯤 들어가면 물소리가 들린다.
천지연 계곡에는 천연기념물 제163호인 담팔수가 자생하고 있으며 물 속에는 천연기념물 제27호인 무태장어가 서식한다.
무태장어는 길이 2㎙, 무게 20㎏이 넘는 것도 있다. 폭포 입구에 커다란 광장을 만들어 놓았다. 각종 축제가 이 광장에서 열린다. 서귀포문화의 중심인 셈이다.
해안을 돌아봤으면 산을 오른다. 서귀포시에서 한라산에 오르는 길은 영실 코스. 아쉽지만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돼 백록담의 문턱인 윗새오름밖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4개의 한라산 등반코스 중 가장 아름답다. 송곳 같은 돌봉우리가 도열해 있는 영실기암, 거대한 주상절리 덩어리인 병풍바위를 조망할 수 있다. 윗새오름까지 왕복 5시간이면 충분하다.
한라산 등반에서 중요한 것은 수시로 뒤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 단풍으로 색깔을 바꾼 오름, 여전히 푸른 빛을 머금은 들판, 서귀포의 시가지, 앞바다의 섬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이상향 ‘서귀포 70리’가 아득한 꿈처럼 펼쳐진다.
서귀포항. 제주 특산물인 한치와 갈치를 잡는 어선들이 아침 저녁으로 드나든다. 요즘은 방어잡기가 한창이다.
/ 서귀포=글 권오현기자 koh@hk.co.kr
■서귀포의 명소
서귀포는 자연의 아름다움만 있는 곳이 아니다. 사람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지는명소도 많다. 2002 월드컵의 한 개최도시로서 손색이 없다. 바닷바람에 몸이 식었다면 두루 돌아봄 직하다.
▼여미지식물원
3,700여 평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온실이 있는 식물원. 1989년에 문을 열었다. 2,000여 종의 희귀 식물과 1,700여 종의 화초ㆍ나무류가 있다.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를 볼 수 있는 중앙전망탑을 중심으로 원형의 온실이 만들어져 있다. 화접원, 수생식물원, 열대생태원, 열대과수원 등이 온실에 들어있다. 외부는 한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의 정원으로 꾸며졌다.(064)738-3828
▼중문민속박물관
중문단지 천제연폭포 하류에 있다. 옛 어촌마을인 ‘배릿내’를 원형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배릿네는 ‘별이 쏟아져 내리는 냇물’이라는 뜻. 28채의 제주식 초가, 정감 넘치는 돌담길 등 제주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박물관 안에는 각종 농어구와 생활용품 3,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생선회와 해물전을 맛볼 수 있다. (064)738-8539
▼이중섭거리
요절한 천재화가 이중섭이 6ㆍ25 당시 피난했던 곳은 서귀포. 약 1년을 이곳에서 살면서 ‘서귀포의 환상’, ‘게와 어린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의 명작을 남겼다.
그가 살았던 초가를 중심으로 한 약 300㎙의 거리를 이중섭거리로 꾸몄다. 그가 살았던 집이 원형 그대로 복원됐고 대향전시실에는 그의 작품17점의 사본이 전시돼 있다.
문의 서귀포시 문화공보실 (064)735-3548
▼퍼시픽랜드
아이들이 환호할 만한 곳. 실내풀에서 펼쳐지는 돌고래, 바다사자, 펭귄의 쇼를 볼 수 있다.
야외광장에는 몽고에서 들여온 낙타가 사람의 눈길은 끈다. 직접 탈 수도 있다. (064)738-2888
■서귀포 리조트호텔
제주도 여행의 큰 고민 중 하나는 숙박. 특급호텔은 비싸고 콘도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소규모 펜션이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역시 혜택을 받는 이들은 한정돼 있다.
서귀포시 회수동에 있는 서귀포리조트호텔(064-738-9000)은 그런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품격있는 숙소이다.
원래는 유스호스텔이었다. 아직도 많은 지도에는 그렇게 표기돼 있다. 한때 임페리얼호텔로 이름을 바꿨다가 새 주인이 들어 내외부를 완전히 새로 고치고 서귀포리조트로 거듭났다. 올 피서철에 일부 객실을 열어 임시 개장했으며 11월에 그랜드 오픈을 할 예정이다.
서귀포리조트의 가장 큰 매력은 전망. 호텔은 한라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산서쪽을 관통하는 99번 도로변이다. 태평양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밤이 깊어 갈치와 한치를 잡으러 바다에 나간 고깃배의 집어등과 서귀포시의 야경이 어우러지면 환상세계가 따로 없다. 고개를 뒤로 돌리면 바로 한라산이다. 짙은 숲과 구름을 머금은 봉우리가 보인다.
113개의 객실은 특1급 호텔 못지 않은 수준. 호텔 안에 승마장과 잔디구장이있고 사우나와 실외풀장도 갖췄다. 차로 5분 거리에 서귀포 자연휴양림이, 15분 거리에 한라산 영실코스 입구가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공항리무진버스를 타고 여미지식물원에 내리면 된다. 하루 두 번 호텔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일반 객실이 1박에 18만 5,000원이며 바닷가 객실은 1만 원이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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