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기차를 타고 가다가 풀 한 포기 없는 붉은 밭을 보았다. 그 밭은 곧 사라졌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아주 잠깐의 일이었다.최정례(46)씨가 새 시집 ‘붉은 밭’(창작과비평사 발행)을 출간됐다. 90년 늦깎이로 등단한 뒤 세번째로 펴내는 시집이다.
시인은 붉은 밭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과도 같은 짧은 시간에 시의 영감이 내려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분(分)과 초(秒)의 파편 속으로 걸어 들어가 시간을 조합하고 분해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3분 동안 못할 일이 뭐야/ 기습 결혼을 하고/아이를 낳을 수 있지/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 나라를 이룰 수도 있지’(‘3분 동안’에서).
‘나는 두통을 견디려고/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꽉 누르고/ 허공에 놓친 오리를 찾는데// 1초 전의 틈 속으로/ 오리는 사라졌다’(‘1초 전에는 오리’에서).
3분 동안 시인은 날아가는 돌의 겨드랑이에서 돋아나는 날개를 보고, 날지 못하는 오리가 1초 전에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것을 본다.
시인은 좀더 가느다란 시간의 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실재하는 것들의 울림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 백분의 일초 동안/ 뼛가루들은 모래알들은 알갱이들은/ 다 짐작하고 있었을 거야…알갱이들은 알갱이 속의 더 작은 알갱이들은/ 떨지도 않고 자기 의지대로/ 추락을향해 가고 있는 거야’(‘무너지기 전에’에서).
이제 시인은 자신의 실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을 단단하게 고정시켜야 한다.
최씨는 자신이 파고들어간 시간의 조각을 움켜쥐기 위해 “저 날개가 접히기 전에…서둘러 겨드랑이에/ 새파란 날개를 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사랑하는 자만이 날 수 있다’는 미겔 에르난데스의 시를 빌려 보지만, 아직 날 수 없다. 시간을 붙잡고 날아오르려면 에르난데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렇지만 누가 그토록 사랑하는가?”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