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진정성은 죽지 않는다"지난 세기말 문학은 우울했다. 세기의 끝에서 죽음을 예언하지 않는 문학을 찾아보기 어렵겠지만, 20세기의 마지막 몇 해 동안 문학이 예언한 죽음은 여느 때와는 달랐다. 그것은 문학 자신의 죽음이었다.
21세기에 문학은 어떻게 될것인가. 문학평론가 김병익(63)씨가 이 불안한 질문에 답하는 두 권의 책을 펴냈다.
그의 새 평론집 ‘21세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문학과지성사 발행)와 산문집 ‘잊혀지는 것과 되살아나는 것들’(열림원발행)은 모두 문학의 자기 구원을 모색하는 여정이다.
그의 표현처럼 ‘흐릿해지는 문(文)과 진해지는 화(化)’의 시대라는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선보이는 저서들이다.
세기말에 김씨는 21세기에 대한 암울하고 부정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다. 그는 디지털 문명의 비인간성을 깨달았고, 가상현실의 세계가 인간이 공유했던 실재감을 전복시키리라는 전율에 시달렸으며, 생명공학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의 자리를 넘보도록 한다는 데 경악했다.
“나의 생애의 마지막 부분이 21세기의 세상에 걸쳐져 있음을 불안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치욕으로까지 여겼다”고 돌아봤던 때이다.
e-메일 보내기라는 생활 속의 사소한 경험에서조차 그가 느끼는 세기의 간극은 크고 넓다.
김씨는 아들이나 사위의 힘을 빌어 e-메일을 보내다가 어찌어찌 혼자 원고를 전송하고나서는 스스로가 그렇게 기특하고 대견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새로운 기기가 본능적으로 낯선 까닭에 한번 기기를 써먹을 때마다 자식들에게 묻고 배워야한다. 김씨는 “인류의 역사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침을 받는 첫 경우를 당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사제관계의 도치와 지식 전승의 역전 현상이 우리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생각할수록 난감하고 곤혹스럽다”고 털어놓는다.
이 ‘무서운 신세계’에서 그는 문학의 앞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다가오는 시대에는 문학의 권위가 해체되면서 지식층의 손에서 벗어나 대중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으로 변질될 것이다. 풍요로운 소비 사회속에서 문학은 대중의 읽을 거리로 자리잡아 에로소설 추리소설 SF 등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장르가 왕성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정통의문학’은 어떻게 될까. 그는 답한다. “미래의 문학이 대부분 대중적인 상품화의 길을 밟겠지만 소수는 그 추세에 저항하는 ‘역전된 언더그라운드 문학’으로 숨어들지 않을까.”
디지털 시대에 기존의 정통문학은 문화상품의 범주에 흡수되는 것을 거부하고, 대중적인 독자들이 쉽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깊이 침잠해 문학의 진정성을 지킬 것이라고 김씨는 생각한다.
이인성이나 정영문의 소설처럼 소수의 마니아가 함께 하는 작품 세계로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어두운 세기말을 지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조금씩 안정을 찾는 것 같다. 부정적 전망의 틈새에서 수락할 만한 여지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20세기의 전통과 미덕이 21세기에도 존속할 수 있다며, 자신이 ‘1999년13월’의 시한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반성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피어나는 아날로그의 인간주의를 찾아보기도 한다. 인터넷망이 이룩한 속도주의가 긴장과 억압을 제독(除毒)하는 선물도 함께 준다는 게 그가 찾아낸 ‘어둡지 않은’ 전망이다.
속도주의의 경제적ㆍ시간적 성과가 클수록 그 잉여의 소득과 시간으로 긴장과 억압으로부터 제독의 장치와 기회를 많이 또 크게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빠르게 일한 뒤 번 시간으로 떠날 수 있는 ‘여행’이 그렇다.
김씨는 이번 책에서 안면도에 머물고 독일을 여행하면서 디지털 세계에서 만난 아날로그 문화, 바이오테크 세상에서 만난 자연의 아름다움도 따뜻하게 전한다.
그의 말처럼 문학은 지하로 내려가 소수의 것이 될지 몰라도, 속도주의 세상의 독을 제거해주는 길고 깊은 호흡을 언제나 계속할 것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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