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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일의 독일이야기] (10)천사와 사령관-통일11주년 가을, 독일의 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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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일의 독일이야기] (10)천사와 사령관-통일11주년 가을, 독일의 세 풍경

입력
2001.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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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아시아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라이프치히 대학 독일문학연구소는 보리수길을 따라 200년 된 장엄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라이프치히에서 가장 미학적인 유명한 음악가 구역에 위치해 있다.이 지역의 거의 모든 길들엔 독일 천재 음악가들, 베토벤 모차르트 하이든 슈만 멘델스존 같은 이름들이 헌정돼 있다.

이 지역엔 구동독 미술의 귀재들을 탄생시킨 라이프치히 학파의 산실인 라이프치히미술대학, 바하와 멘델스존의 계보를 엄격하게 계승하고 있는 명성높은 멘델스존음악대학, 그리고 통일 후 엄청난 재원을 쏟아부어 복원한 빼어난 대리석 기둥과 장엄한 유리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라이프치히대학 중앙도서관이 자연채광량에 따라 자동으로 기능하는 채광커튼으로 무장한 채 보다나은 인간정신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이 가을, 보리수 아래서 이곳 대학생들과 아이오와주립대학 작가연구소, 혹은뉴욕 줄리어드 음악학교 출신의 미국 교환학생들이 물처럼 어울리는 것을 보면서 통독 11년이 성취해낸 그 화해의 힘에 놀라게 된다.

11년 전만해도 이곳 대학생들에게 미국은 국가의 적이었다. 국가의 적, 그것은 아도르노식 표현대로라면 동독이라는 이름의 권력이 동독 국민에게 마련해 준 선(善),즉 국민의 목에 걸어준 ‘편견의 굴레’였다.

문제는 내가 일하고 있는 독일문학연구소와 정원을 나란히 하고 있는 이웃, 라이프치히 미국총영사관이다.

9월 뉴욕 테러참사 이후 총영사관 주변엔 즉시 특별수비령이 내려졌고 바리케이드와 장갑차, 저격수를 포함한 수비대가 등장했다.

이 지역 입구에서 수정빛 물줄기를 뿜어올리던 분수대도 그날 이후 그 환희를 멈췄다. 이제 남은 것은 총영사관 앞에 놓여진 시민들이 보낸 조화와 촛불, 그리고 바리케이드 주변을 감도는 돌연한 침묵이다.

10월 개강 후 학교측은 경비당국에 강의진과 재학생 명단을 제출했다. 매일 아침 바리케이드 앞에서 신분증을 보이면 경비병들이 무선기로 명단을 확인하는 일이 반복된다.

아침마다 일일이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이 통과의식을 치러내면서 문득 이 시대 계몽주의자 하버마스의 용어 ‘창문 없는 정신(精神)’을 떠올린다. 여기서 창문이란 곧 ‘이성(理性)’의 다른 이름이다.

지난 주 독일 제1방송은 ‘결합의 종말’이라는 영화 한 편을 방영했다. ‘천사와 사령관’이라는 애수적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1992년 의문의 동반자살을 한 녹색당 창당 멤버인 여자 평화운동가 페트라 켈리와 그녀의 연인인 전역 육군대장 게르트 바스티안의 비극적 종말에 대한 반기록적 필름이다.

독일 여성운동가 앨리스 슈바르쳐의 표현에 의하면 켈리는 ‘독일 환경, 평화, 여성운동의 잔 다르크’였다.

아름답고 정력적이고 타협을 모르는 이 평화운동의 여전사는 어느날 한 평화운동토론회에서 전역 사령관인 25세 연상의 유부남 바스티안을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만년 소녀 같은 평화운동의 기수와 일생 전략과 무기의 숲에서 살아온 한 전역 사령관의 이 운명적 만남, 평화와 전쟁이라는 서로 다른 진영의 극적 결합이 당시 독일사회의 관심을 끈 것은 당연하다.

동거 10년 간 그들은 정력적으로 평화운동을 펼쳐나간다. 그러나 타협을 모르는 켈리의 이상적 태도는 녹색당 동지들과의 갈등 속에서 서서히 좌절과 분해의 조짐을 보인다.

결국 좌절과 고립에 처해진 두 이상주의자. 어느날 밤, 이 전역 장군은 자신의 총으로 잠든 연인 켈리를 살해하고 자신도 권총자살한다. 그들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자살의 날로부터 18일이 지난 후였다.

결국 두 사람의 ‘희망의 담지자’는 그렇게 자신들의 날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스스로 추락해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9년 후인 이 가을, 녹색당은 정치적으로 성공해 집권당인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가 되어 집권세력이 되어있다.

켈리의 창당동지였던 요시카 피셔는 외무부장관이 되어 미국이 결정한 테러와의 전쟁에 맹방으로서의 독일의 협조를 확약하고 있고, 사민당으로 당적을 옮긴 또 다른 동지 오토 쉴리는 내무부장관이 되어 강경한 태도로 독일내 테러와의 전쟁을 총지휘하고 있다.

과연 전범국 독일이 패전 56년 만에 다시 그 손에 무기를 거머쥐어도 좋단 말인가. 이 뼈아픈 질문은 미국에 의해 테러와의 전쟁이 포고된 2001년 이 가을, 전 독일 사회와 독일 지성, 그리고 특히 평화와 환경운동이라는 강령 속에서 탄생한 반전주의 정당 녹색당을 가차없이 심각한 성찰 속으로 던져넣고 있다.

며칠 전 드레스덴에서 열린 당대회에서 이상주의 정치집단 녹색당은 반전인가 참전인가를 놓고 당의 존립 경계까지 밀어붙이는 치열한 근본적 토론을 벌였었다.

설상가상으로 뉴욕 참사 이후 최초로 치러진 함부르크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자기모순에 빠진 이 ‘주춤거리는 영혼’ 같은 녹색당을 가차없이 참패시켰다.

패전 후 지금까지 ‘전쟁’은 사실상 동서 양독 모두에게 절대금기였다. 그런 이유로 9년 전 천사와 사령관의 동반자살, 평화와 전쟁이라는 엄숙한 두 세계의 결합의 파국이 문득 예언적으로 느껴지는 시간이다.

10월 11일, 라이프치히의 세계적인 음악홀 게반트하우스에서는1,500명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독일 통일의 문을 연 라이프치히 평화혁명 12주년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그 청중 속엔 평화혁명 당시 탱크와 무장병력과 마주 선 7만여 명의 시민에게 “절대 비폭력”을 호소함으로써 결국 명예로운 평화혁명을 탄생시킨 ‘라이프치히 6인’ 중 상징적 인물인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와 정치풍자극 배우 번드루츠 랑에도 끼어있었다. 랑에는 말한다.

“12년 전 가을 라이프치히 평화혁명이란 기적을 가능케 한 것은 당시 목숨을 걸고 침묵시위에 나선 7만 시민의 그 ‘혁명적 참을성’이었습니다. 11년이 지나는 동안 통일이란 이름의 동서독간의 역사적 혼인 속에 깃들어 있던그 첫사랑의 정열은 갔습니다. 통일 당시 동서독 사이를 거세게 용솟음쳤던 감격, 민족애, 관용, 설레임, 희망은 이제 사라진 것입니다. 통일 후 구동독 기업과 국유재산에 대한 경제정책인 ‘신탁기구’는 동독경제를 회생시키는 산파역 대신 도리어 안락사시키는 역할을 맡았고 결국 충격적인실업이 전염병처럼 닥쳐왔습니다. 그래도 구동독 시민들은 바로 그 혁명적 참을성으로 11년 간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실습을 치른 후 내년부터는 유럽공동체라는 더 큰 역사의 바다로 흘러들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토론회 다음날 마주어는 자신의 런던필을 이끌고 25년 간 악장으로 있었던 그의 음악의 이타카인 게반트하우스에서 공연,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곳 신문은 그가 곧 장기이식, 아마도 신장이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확실히 이 가을의 화두는 전쟁과 정의이다.

이럴 때 극작가 하이너 뮐러의 말은 예언적이다. 그는 말한다. “전쟁의 동기가 아무리 순수하다 할지라도 전쟁이라는 무서운 살육의 현장으로부터 순수한 두 손으로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재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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