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약관도 없는 상품을 어떻게 팔라는 겁니까. 왜 항상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습니다.”22일 D증권의 C팀장은 약관도 없는 상품을 팔아야 하는 상식밖의 일을 해야했다. 이날 오전부터 일제히 판매에 시작한 장기증권저축의 약관이 이날 오후 2시30분까지도 당국의 승인이 나지 않았던 것. 오후 3시께야 금감원승인이 떨어졌지만 이로 인한 혼란은 투자자들이 짊어져야 했다.
정부의 증시 부양책이 무리수를 거듭하고 있다. 정부가 잇따라 내놓고 있는 증시부양 관련 상품들도 탁상 행정과 졸속 추진으로 대부분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특히 상품의 내용이 확정되기 전에 상품부터 팔려는 정부의 조급함때문에 시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주식갖기펀드 판매 사실상 빈수례
증시 부양을 위한 정부의 욕심이 만들어낸 가장 기형적인 상품은 주식갖기운동펀드.지난달 25일 청와대와 재경부 지시로 증권사들이 부랴부랴 만들기 시작한 주식갖기운동펀드는 판매 한 달이 다 돼가지만 증권사별 판매액은 1억~2억원에불과하다.
전체 설정고가 120억도 안되고 계열사 자금 100억원이 포함된 삼성투신운용 설정고 111억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판매를 거의 하지 못한셈이다. 중소 증권사는 아예 상품을 만들지도 않았다.
당초 이 상품은 언제든지 수수료 부담 없이 환매할 수 있고 투자 수익률이20%를 넘지 않을 경우에는 판매ㆍ운용 수수료도 내지 않아도 돼 1조원 이상이 몰릴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A증권사 관계자는 “테러사태직후 미국에서 애국심에 호소하는 분위기가 일자 이를 보고 당국에서 급조한 상품”이라며 “시장 상황은 외면한채 탁상공론으로 만든 상품에 누가 돈을 넣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8월부터 판매된 비과세 고수익고위험 펀드도 이미 시장에서 잊혀진 지 오래다.8월 한달 1조6,677억원의 자금을 끌어 모았지만 9월 이후 신규 자금 유입이 급격히 감소, 현재 총 수신고가 2조2,000여억 수준에 머물러있다.
세금 면제와 종합과세 제외, 공모주 우선 배정 등의 혜택이 있지만 신용등급이 B-~BB+인 투기 등급 채권을 30% 이상 편입해야 하는탓에 테러 사태 이후 시장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장기증권저축혼란 계속
때문에 이날부터 새로 판매되는 장기증권저축의 앞날에 대해서도 시장에선 반신반의하는분위기다. 특히 정책 당국이 상품의 내용이 확정되기도 전에 상품 판매를 앞당기는 데에만 열중,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당초 손실보전을 해주는 안이백지화한 데에 이어 매매 회전율을 400%로 제한하는 규정이 신설됐지만 이에 대한 사전홍보가 소홀해 증권사별로 상품 설명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매매 회전율을 어떻게 정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과이에 따른 시행령이 확정되지 않아 결국 아무도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B증권사 관계자는 “매매회전율을 400%로 제한하면 주가가 4배 이상 올라도 세금혜택을 받을 수 없는데 이는 상품의 당초 취지와 어긋난다”며“충분한 검토 없이 상품만 팔라고 하니 현장에선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다른관계자도 “인위적인 증시 부양은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킬 뿐”이라며 “정부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가스업종,장기증권저축 최대수혜"
장기주식저축의 최대 수혜주는? 대다수 증시전문가들은 가스업종을 해답으로 내놓는다. 안정적이고 배당수익률이 높은 내수관련주라는 이유에서다.
장기주식저축 상품은 운용기간이 길고 한 종목을 장기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이 상품으로 구성된 펀드를 운용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이 같은 특징의 종목을 주로 편입할 것으로 보인다.
세종증권은 22일 “재무안정성을 확보한 가운데 배당수익률이 높은 기업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며 “최대 수혜업종은 가스업종”이라고 분석했다.
이민구 연구원은 “주식보유비중이 70% 이상이고 연간 회전율이 400%로 제한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선 안정성이 높아야 하며 동시에 연말을 앞두고 있어 배당수익률이 높은 주식이 유리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안전성 측면에서는 부채비율을, 수익성 측면에서는 배당수익률을 기준으로 종목선정을 한 결과, 내수관련주인 가스업종이 가장 수혜가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신증권은 “세액 공제 효과를 노린 투자자의 자금이라는 점과 장기간주식을 보유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간접적인 수혜주가 나타날 수 있다”며 “매년 꾸준한 배당을 실시하는 종목군과 저가 대형주가 선호주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매년 안정적 배당을 실시하고 있는 SK가스와 LG가스를 비롯한 가스주, 꾸준한 수익개선과 함께 배당 수익률이 높은 풍산과 제일모직 등이 유망 종목으로 꼽힌다.
또 개인투자자의 선호도과 관계없이 현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주가와 내년 이후 주식시장이 장기적인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형 우량주도 장기투자로 추천할 만하다. 내년부터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든다고 가정할 때 운수업종(항공업 제외), 증권 및 전기전자 업종도 눈여겨볼 만하다.
진성훈 기자
■첫날 71억 판매 그쳐
22일 오후부터 26개 증권사 창구를 통해 판매된 장기증권저축 '밸류코리아펀드'의 첫날 판매실적이 모두 71억2,600만원으로 집계됐다.직접형은 63억3,500만원,간접형은 7억 9,100만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증권사들은 연말 세액공제를 노린 자금이 몰린다면 1조원 이상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첫날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함에 따라,주식 매매회전율을 연 400% 이내로 제한키로 한 규정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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