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양다리 외교에 당황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오일경제’의 논리로 파악하는 분석이 나와 흥미롭다. 뉴욕타임스는 21일 미국의 높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정치ㆍ군사적 희생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대 테러전쟁에서 드러난 사우디의 외교노선을 이같이 풀이했다.사우디는 미국의 기지사용 요청 거절은 물론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희생을 이유로 공습에 반대해 왔다. 사우디의 수동적 태도로 인해 대 테러 국제공조 전선에 예상밖의 차질을 빚게되자, 조지프 리버맨(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날 “사우디는 미국 편에 설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사우디의 이 같은 행보는 다분히 ‘석유정치’ 에서 비롯된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테러사건 이후 국제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조치로 20달러 선에서 안정돼 있다. OPEC은 세계 원유시장 40%를 공급하는 최대 카르텔로, 친미파인 사우디가 큰손 역할을 맡고 있다. 더구나 세계인구의 5%를 차지하는 미국은 세계 원유 하루 소비량(7,600만 배럴)의 25%인 1,900만 배럴을 소비해, 경제의 명줄을 중동에 걸고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70년간 미국의 중동외교가 원유의 안정공급에 초점을 맞춘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우디는 이런 미국에 원유를 보다 저가에 공급, 돈보다 영향력 확대를 꾀했고, 미국은 사우디에 ‘달러’와 ‘안보’를 지불해왔다. 그러나 와하비즘(이슬람 청교도주의)을 채택해온 사우디 왕가는 한편으로 부패와 실정에 따른 반미ㆍ반정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이슬람 과격단체를 지원해왔다. 특히 최근 2년간 아프간 탈레반정권에 원유 원조를 통해 무장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우디의 양다리 외교에 대해 미국은 뾰족한 대처수단이 없이 속앓이만 하는 실정이다. 오히려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의 파문경고를 받은 사우디 왕가를 이스라엘 강경책 등으로 측면 지원해야 할 입장에 있다.
미 정부는 원유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알라스카 등의 원유개발을 추진중이나, 미국 원유매장량이 세계 3%에 불과해 중동 의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클린턴 정부시절 에너지담당 보좌관을 지낸 댄 W 라이커는 “애국심은 더 이상 성조기를 흔드는 것이 아니다”며 “경제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등 다가올 오일쇼크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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