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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와이키키 브라더스' 3류들이 노래하는 구슬픈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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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와이키키 브라더스' 3류들이 노래하는 구슬픈 인생

입력
2001.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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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노래한다. 그리고 소주를 마신다. 현인의 ‘서울 야곡’을 버릇처럼 읊조리고, 목이 반지르르한 기타 줄로 지나간 세월을 쓰다듬고, 아득해진 어린 시절꿈을 다시 기억해 내고, 쓸쓸한 퇴락의 지금을 슬퍼할 때, 안주 없이 마시는 소주 한 잔이 허전한 가슴을 적신다. 눈물을 대신하는 한숨이 된다.삼류는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한다. 일류를 위해 살아갈 뿐이다. 나이트클럽의 가수는 일류 가수의 노래를 가장 그럴 듯하게 부를 때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 받고, 너훈아 이엉자는 어설픈 닮은 꼴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내’가 아닌 ‘남’의 것으로 얻은 공허한 박수와 웃음으로 살아갈 뿐이다. 삼류는 결코 일류가 될 수 없다. 세상은 파도처럼 조금씩 그들을 밀어내고, 그때마다 헐거워지는 가슴을 채우려 점점 잦아지는 소주잔.

수안보 한 호텔 나이트클럽에 새로운 밴드가 온다. 대도시에서 밀려난 ‘와이키키 브라더스’.

리더 성우(이얼)의 귀거래사는 이렇게 초라하다. ‘비틀즈’처럼되고 싶어 고교시절 밴드를 만들어 밤새도록 ‘세상만사’ 와 ‘불놀이야’를 부르던 그 시절은 이제 ‘추억’일 뿐이다.

그에게 노래는 비루한 밥벌이일 뿐. 고교 시절 멤버들과 발가벗고 해변을 달리던 그는 룸살롱 손님의 강요로 발가벗긴 채 노래하는 피에로로 전락했고, 노래방 화면에서는 늘씬한 미녀들이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을 차지해 버렸다.

성우는 분노하지 않는다. 소리치지도 않는다. 무대 위에서 그는 노래하고 연주하는 기계일 뿐이다. 삶의 희로애락이 말라버린 듯한 그 마른 표정이야말로 소리 없는 절규와 눈물과 통곡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삼류 인생들의 유전.

드러머 강수(황정민)는 목욕탕 여자와 사랑을 하려다 실패하고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된다. 그 여자를 가로챘다 봉변만 당한 오르간 연주자 정석(박원상)마저 룸살롱 1인 연주자로 불려 다닌다.

강수가 떠난 자리를 옛날 음악학원 원장이 메우고, 그것도 뜻대로 안 돼 결국 웨이터 막내인 기태(류승범)의 가짜 연주에 자신의 자리를 내주고 쓸쓸히 돌아서는 성우.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못다 부른 노래가 있고, 못다한 사랑이 있기에. 고교 시절 그를 열병에 빠지게 했던 여고밴드의 리더 인희(오지혜).

참! ‘내게도 사랑이, 사랑이 있었다오. 그것은 오직 당신 뿐이라오(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 만약 그녀가 지금 일류가 돼 있었다면 그 사랑은 또 하나의 ‘추억’으로 끝났을 것이다. 남편을 잃고 혼자 야채행상을 하며 사는 그녀, 이따금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하며 답답한 가슴을 달래는 그녀를 다시 만나면서, 남의 즐거움을 위해 부르기만 하던 그의 노래는 ‘내 것’이 된다.

‘나홀로 걸어가네. 초라한 내 모습이 나는 싫어’라고 노래하는 성우.

인희 역시 마찬가지리라. 그래서 또 다른 무대를 찾아 떠난 낯선 도시에서 성우는 기타를 연주하고, 인희는 노래한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거야…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당신 없인 아무것도/이젠 할 수 없어’(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

그들이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그래, 내가 너희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라며 돌아서는 임순례 감독.

너희들에게 더 큰 행복을 주는 것도, 달려들어 껴안고 소리내 우는 것도, ‘현실 모순’이니‘사회 비판’이니 하는 말들을 요구하는 것도 모두 영화적 위선일지도 모른다.

‘세친구’ 처럼 이게 삼류의 인생이다. 그것을 무심히 지켜본다고 그들에 대한 사랑이 작다고, 그 인생이 보잘 것 없다고 누가 말할 수있으랴.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 나면 고급스런 분위기의 카페의 양주보다는 텅 빈 공원 벤치에서 자기 연민에 가득찬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질 것이다. 유행가 한 구절을 읊조리며. 명필름 제작. 27일 개봉.

남자(왼쪽)는 기타를 치고, 그의 옛 사랑인 여자는 노래한다. 이제 "사랑 밖엔 난 몰라"라고.

이대현기자

leedh@hk.co.kr

■주연 성우역 이 얼

설경구를 닮았다. 해바라기의 유익종 이미지도 있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이얼(37)은 표정이 없다.

가슴에 잔뜩 분노를 안고 있는 듯하기도 하고, 슬픔을 감추려는 모습이기도 하고. 영화를 찍기 전에 나이트클럽에 가 봤다.

거기서 노래하는 밴드들 대부분이 무표정했다. 왜?

“그들도 처음에는 관객과 만나는 자기 노래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너지고, 춤추는 사람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음악을 하면서 그들은 기계가 됐을 것이다.”

도중에 대학(경원전문대)을 그만 두고 뛰어든 연극판. 어느 날 그는 그 가난하고 힘겨운 곳을 떠났다. 연기에 자신감도 없었다. 다른 삶이 있겠지.

의정부에서 포장마차, 에어컨 설치업, 부동산 소개소를 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다시 연기를 해야지”하며 그렇게 4년이 지나가고 있을 때 임순례 감독이 그를 찾아 왔다.

“엄청난 제의였다. 영화라고는 ‘49일의 남자’(1994년)와 ‘축제’(1996년)에 잠깐 나온 것이 전부인데.”

“좋죠”라고 대답해 놓고는 후회했다. 기타 한 번 잡아보지 못했고, 노래 실력도 없으면서 밴드의 리더라니. 며칠 후 술을 잔뜩 마시고 “못하겠다”고 말하려 했다.

그 때 임순례 감독이 하는 말. “다 알고 있다.” ‘믿음’이 힘을 주었다. 비록 노래와 연주가 모두 다른 사람의 녹음(play back)이지만 사실감을 위해 그는 손이 부르트도록 기타를 연습했고, 입을 맞췄다.

“어차피 이얼 식의 성우일 수밖에 없다. 외형은 모방이 가능해도 감정은 내 것으로 했다.”

그는 극중인물 성우가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왔다고 한다. 거칠게도 드러내고 싶었지만, 성우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그 감정을 순화했다.

대신 음악학원 원장과 함께 연주할 때, 인희와 같이 무대에 섰을 때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보였다.그 순간 “아, 그들의 인생도 이렇게 소중하구나”라고 느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사람들의 가슴을 메이게 하는, 배우 이얼의 존재가 더 없이 아름답게, 오래도록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얼 역시 벌써 ‘와이키키 브라더스’를10번이나 봤지만 보고 나면 늘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고 했다.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러고 보면 나도 삼류 인생인 모양이다. 좀 더 다양한 연기로 그 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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