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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양반기질 남아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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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양반기질 남아있는 사회

입력
2001.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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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양반'을 찾아보니까 이렇게 나온다. "근세 조선 중엽에 지체나 신분이 높은 상류 계급의 사람….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한다. 양반은 얼어죽어도 짚불은 안 쬔다."이씨 조선이 사라진 지 100년이 되었지만 '양반'정서가 오늘날의 한국에서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인들은 옷차림부터 '양반' 같다. 엄격하고 세심하다는 독일과 일본에서 온 친구들까지 한국 사람들의 쪽 빼 입는 정장 차림이 놀랍다고 한다.

얼마 전 선배의 친척 장례식에서 내 옷차림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샌들을 신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한국 교수들은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양복, 구두, 넥타이까지 챙긴다. 중국에서는 여름이면 티셔츠, 반바지에 샌들 신고 수업 들어가는 교수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교수가 그렇게 입으면 "아니, 교수라는 양반이 어떻게 그럴 수가…"라는 핀잔을 듣는다.

유교 사회에서는 '사, 농, 공, 상'이라고 해서 지위가 제일 높은 사람이 사대부, 그 다음이 농민, 장인, 상인순이다.

양반이 가장 무시하는 일이 이익을 시시콜콜 계산하는 장사 일이다. 이점이 중국과 너무 다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에서 저자는 중국인은 모두 장사꾼이라고 주장했는데 한국인은 장사 정신이 너무 부족하다.

간단한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과일과 채소를 근으로 팔지않고 개수로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으로 팔더라도 두 개를 달아보고 한 근이 안 될 때 한 개를 더 넣어서 달지도 않고 가져가라 한다.

한 개 더 넣었을때 정말 한 근을 채웠는지 달아보라는 아줌마도 거의 없다. 중국처럼 가격 흥정을 실컷 하고 나서 저울로 몇 번이나 달아보고 몇 그램 단위까지 돈을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줌마들까지 시시콜콜 계산하는 것을 싫어하는 양반사회다. 중국의 대학 부총장이 시장에서 채소 파는 아줌마와 가격을 흥정하는 것을 보고 한국 교수가 그렇게 놀라워 했다고 한다. 체면을 따지는 양반들의 사회와 실리를 따지는 사회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대부들은 '군자불기(君子不器)'라고 해서 어느 한 분야에 전업하는 장인이 되는 것을 꺼린다. 바로 이런 사상이 동양의 과학기술 발달을 방해했다.

거만한 중국이 서양의 대포 소리에 잠이 깰 때 가장 먼저 버린 것도 이런 사상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0년이 넘는 시간에 중국과 한국이 서양 문화의 핵심이라는 '과학'과 '민주주의'를 배워왔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중국이 한국보다 과학에 더 열중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과학자,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고 학교에 다닐 때도 수학, 물리, 화학 성적이 좋아야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중국에서 자연계열이 강한 청화대가 인문계열 전통을 가진 북경대 보다 더 드세고 국가 지도자들 중에도 공과 출신이 많다.

한국도 과학을 중요시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법대로 가고 법을 배운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어간다. 실은 중국 역사에서는 '양반'이라는 신분제도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중국에서는 '사, 농, 공, 상' 중 '공'과 '상'의 사회적 지위, 특히 돈 많이 버는 상인의 사회적 지위가 결코 낮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성리학이 단지 유교 중의 한 유파로 간주됐고 유교 이외에도 다양한 사상들이 경합했다.

사람들은 이들 중 자기에게 맞는 걸 인정한다는 실용주의적 태도를 취하게 됐다. 이 같은 양국의 역사상 차이점이 한국이 체면을 중요시하는 양반사회, 중국이 실리를 쫓는 사회로 각각 나아가게 한 원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왕 샤오링 경희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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