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는 '이방의 문화지대'가 있다. 빌딩 숲속에,주택가를 빙빙 돌아 작은 골목에,공단 담너머 조그만 건물에 이런 저런 이유로 뿌리를 내린 타국인의 삶이 존재한다. 새삼 이를 조명하려는 것은 이들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 '다채로움'이라는 소중한 선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편집자주≫19일 정오 서울 용산구 한남2동 이슬람 사원(중앙성원). 금요일 합동예배시간(오후1시)이 가까워지면서 ‘따끼야’(흰색 등의 모자)를 쓴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예배를 알리는 육성 방송 ‘아잔’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막 도착한 무슬림들이 성원내 카펫에 엎드려 바닥에 연신 이마를 맞대고 있다.
마당에는 한가롭게 둘러서서 서로 안부를 묻는 무슬림들 사이를 어린 무슬림들이 뛰어다니고 한켠에는 간이요리점이 빵과 고기를 썰며 손님을 맞는다.
형제국인 아프가니스탄에 미국의 특수부대가 속속 투입되고 있지만 서울에서 만난 무슬림의 모습은 그저 평화롭기만하다.
■10여개국 7만여명의 무슬림 거주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은 무려 7만여명. 이중 내국인도 2만여명이나 된다. 출신지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서 동남아, 아프리카까지 다양해 서울의 무슬림은 ‘다국가 다민족’형이다.
당연히 언어와 생활풍습이 제 각각이지만 종교를 매개로 커다란 단일집단을 이룬다.
그러나 일상의 삶은 천차만별이다. 이태원 등 서울 도심에 거주하는 무슬림은 극히일부이고, 대개 서울 외곽과 수도권 공단 주변에 흩어져 산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제3국가 사람들이 주로 3D업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것은 이슬람 성원과 금요예배다. 예배는 대개 아랍어로 진행되는데, 무슬림이라면 기본 용어는 모두 알고 있어 서울의 예배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날은 특별히 한국인 이맘(예배인도자로 목사격)이나와 우리말과 영어로 설교를 하는 바람에 700여명 무슬림중 절반 가량이 못 알아듣는 듯했다.
그러나 종교가 삶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무슬림에게 언어는 문제가 안된다. 성원에 온 건만으로도 행복하다. 하루 5번씩 자체 예배를 보고 연간 저축액의 2.5%를 헌금으로 내는 그들이다.
이슬람중앙회 이주화(李周和) 사무차장은 “무슬림 시설이 워낙없기 때문이겠지만 성원은 그들에게 예배당이자 휴식터, 만남의 장소”라고 말했다. 어려운 근로조건 아래서 막일을 하다 일주일에 한번 성원에서 동료들과 만나 힘든 타향살이를 털어놓고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무슬림 타운은 아직 시기상조
수백명의 무슬림이 모여드는 성원 주변은 그러나 ‘무슬림의 타운’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한국적이다.
이슬람의 특성상 편의ㆍ위락시설 등이 거의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 그리 크지 않는 아랍어 간판을 단 레스토랑 몇 개가 고작이다.
예배가 끝난 후 터키레스토랑 살람은 ‘제2의 성원’으로 변했다. 꽉 들어찬 무슬림들의 활기찬 목소리에서 미국의 대 테러 전쟁에 따른 위축과 우려를 찾아볼 길은 없다.
정진수(鄭鎭秀ㆍ37) 사장은 “이들의 화제는 여전히 한국생활과 임금, 노동강도, 일터 분위기”라면서 “아프간인근 국가 출신인들은 가족의 안부를 걱정하지만 미국에 대한 적대감 표현은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한국에서 궂은 일을 도맡다시피 하는 무슬림들의 바람은 의외로 단순하다. 아프간을 침공한 미국의 패배도, 또 다른 테러의 획책도 아니다.
고향과 형제국의 평화와 함께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지불과 근로조건 개선이다. 파키스탄인카심(47ㆍ노동)씨는 “무슬림들은 테러와 전쟁을 싫어할 뿐 아니라 전쟁때도 노약자들을 죽이지 말라고 배운다”고 평화주의자임을 강조한 뒤 “우리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이번 사태로 더욱 악화되거나 직장의 차별대우가 더욱 심해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을 뜻하는 ‘알라’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뜻하는 ‘이슬람’. 서울의 무슬림들도 알라를 위해 이슬람속에서 살고있다.
“앗쌀라 무 알레이꿈”. 헤어지는 기자에게 한 무슬림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이란 뜻이다.
염영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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