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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쿠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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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쿠바 위기

입력
2001.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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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0월22일 소련제 무기가 쿠바로 수송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함정 183척, 군용기 1,190대로 쿠바 해상을 봉쇄하면서 전세계를 핵전쟁 발발의 공포로 몰아넣은 쿠바사태가 시작됐다.1959년에 카스트로가 수립한 쿠바 혁명 정부에 대해 미국은 중앙정보국(CIA)을통해 망명 쿠바인들의 쿠바 침공을 부추기고 해ㆍ공군을 통해 쿠바의 영해ㆍ영공을 수시로 침범하는 한편, 미주기구(OAS)에서 쿠바를 축출하는 등군사적ㆍ외교적 압박을 가하며 정권 전복을 꾀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쿠바는 1962년 9월 소련과 무기원조 협정을 체결해 소련의 미사일을 도입했다.미국은 그 해 10월14일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대가 쿠바에 건설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이를 세계에 공포하고, 10월22일 쿠바에 대해 해상봉쇄조처를 취했다.

추가 미사일을 실은 소련 선박이 쿠바로 향하는 가운데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의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에게 국제연합의 감시아래 공격용 무기를 쿠바에서 철거할 것을 요구했다.

전세계의 긴박감 속에서 서로 대치하던 두 나라는 10월28일 흐루시초프가 쿠바 미사일의 철거와쿠바로 향하던 소련 선박 16척의 귀환을 명령하고 케네디가 11월 20일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를 풂으로써 위기를 수습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63년 워싱턴과 모스크바 사이에 핫라인(두 정부간의 긴급연락용 직통 통신선)이 개설됐고, 핵전쟁을 피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모스크바조약)이 체결됐다.

쿠바 사태와 그에 이은 모스크바 조약으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은 누그러졌지만, 중국이 이를 두고제국주의 진영에 대한 소련의 항복 노선이라고 격렬히 비난하면서 중소 두 나라의 갈등은 크게 악화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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