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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어떻게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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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어떻게 불러야 할까?

입력
2001.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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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오면 TV에서 가족, 친척들간의 올바른 호칭에 대하여 설명해주는 시간을 갖곤 하더니 요즈음에는 그나마 뜸해진 것 같다.언제부터인지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 '아빠'로 보편화되어 버렸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하여 제법 연세가 드신 듯 보이는 분들이 공공연한 장소에서 남편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도 낯설지 않게 되어 버렸다.

몇 해전, 꽤 돈 많은 집안에서 장인과 사위 사이에 재산문제로 소송이 있었던 일이 있었다. 그 당시 한편의 딸이자 다른 편의 아내인 사람이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하게 된다는 신문기사를 읽다가 웃음을 참기 어려웠던 일이 있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들 중에는 원고와 피고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평소에 부르던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만약, 남편과 아버지 사이의 소송에서 증언하는 여자가 '아빠'라는 단어를사용하게 된다면, 원고와 피고 중 누구를 호칭하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할까?

그 증언을 듣고 있는 판사는 문맥상 누구 인지가 명백히 특정되지 않는다면 거액의 재산이 달린 사건을 심리하는 입장에서 수시로 증언을 중단시키면서 증인이 지금 말한 '아빠' 어느 편을 말하는 것이냐고 확인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때이지만, 내 어린 시절에는 호칭에 대하여 꽤 엄격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심지어는 아버지에게 '아빠'라는 단어는 사용해 볼 엄두도 못 냈고(영화에서 듣는 것을 빼면, 실생활에서는 주변에서 거의 들어 본 적도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러 본 것은 오히려 한참 나이가 든 요즘, 팔순이 다 되신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려보고자 일부러 해보는 정도가 고작이다.

결혼 초 시집 가족들과 함께 살던 무렵, 시어머님이 외출 중에 친척이 찾아 오셨을 때의 일이다.

마침 친정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와서 통화하는 중에 그 친척이 바꿔 달라고 하셔서 깜짝 놀라 '우리 어머니 아세요?' 라고 했더니 '친정 엄마였어?'하는 것이다.

통화가 끝난 후 그 친척은 어쩐지 시어머니와 하는 통화가 너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통화 중 '어머니' 호칭하는 것을 듣고 당연히 시어머니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가족관계에서의 호칭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에 대한 호칭도 무턱대고 '누구 엄마', '누구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요즈음은친·인척간에도 '아무개 엄마', '아무개 아빠'가 일반적인 호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아이들 이름은 빼어 버린 채 아이들과 같은 호칭으로 '이모', '고모'. '삼촌'하고 부르는 말이 일상화 되어 버려서 아이들이 주인인 세상이 된 듯 착각할 때가 많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사춘기를 넘어 커 가면 '큰 아가씨', '작은 아가씨'라고 불러 주었다. 비단 우리 아이들만이 아니다.

혹시 변론을 맡게되는 청소년들에게도 나는 '아가씨', '도련님'하고 불러준다. 아이들은 어색한 호칭 때문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지만, 대화하는 동안 틀림없이 아가씨나 도련님 같은 자세로 앉아서 아가씨나 도련님 같은 말투로 대화를 하려고 노력 한다.

아이들을 잠시 얌전하게 하자고 일시적으로 그런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정말로 우리 청소년들이 아가씨나 도련님의 생각을 가지고, 아가씨나 도련님의 모습을 갖추려고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한 때 유행이던 공주병도 나는 아주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호칭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참 크다. 아버지에게도 '아빠'라는 단어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도, 요즈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호칭에 익숙해지지 않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조금 다른 호칭을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황덕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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