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파키스탄 대외정보국(ISI)이 다시 손을 잡았다. 1980년대 찰떡 공조를 과시하며 아프간에서 소련군 축출에 앞장섰던 두 기관이 이번에는 자신들이 키운 탈레반 정권 괴멸작전에 나선 것이다.CIA와 ISI는 1980년 초부터 아프간에서 고락을 함께 했다. 파키스탄의 대내외 정책을 장악, 보이지 않는 정부로 불리는 ISI는 아프간 반군을 돕기 위해 자국내 아프간 출신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전선으로 내보냈다. 소련의 붕괴를 원했던 CIA도 아프간 반군에 스팅어 미사일 등 미제 무기를 공급했다.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따르는 아랍 전사들이 미국의 지원하에 소련축출 전쟁의 선봉에 선 것도 이 때다.
당시 두 기관은 아프간 접경지역에서 아편재배 및 헤로인 생산을 묵인하며, 이를 반군지원 경비조달에 활용하기도 했다. 1989년 소련군이 물러간 뒤 CIA는 아프간에서 손을 뗐지만, ISI는 지난달 미 테러발생 때까지 탈레반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대한 정보망을 구축해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탈레반을 상대로 테러전쟁을 하는 미국으로서는 ISI의 도움이 절실해졌다. 산악지대 동굴 등에 숨어있을 빈 라덴을 찾아내려면 인공위성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백명의 정예요원을 아프간 인접국에 파견했지만, 인적 정보망이 하루 아침에 구축될 리 만무했다. 더욱이 파키스탄 무샤라프 정부가 협력을 약속했는데도 ISI는 미국에 정보제공을 꺼렸다. 오히려 미국의 공습정보를 탈레반측에 알려줬다.
그러나 무샤라프 대통령이 7일 친탈레반 성향의 ISI 정보부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양측간 공조는 힘을 받기 시작했다. ISI는 탈레반 정권의 탄생지인 남부 칸다하르의 파슈툰족 지도자들에게 접근, 탈레반 이후의 권력 보장을 약속하며 탈레반에 반기를 들도록 공작을 펴고있다. 또 CIA을 이들과 직접 연결시켜 주며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와 빈 라덴의 행방에 대한 정보제공을 종용하고 있다. 최근 탈레반 지도부의 분열상이 노출되고 있는 것도 두 기관의 공작 결과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러나 두 기관의 협조관계가 냉전당시의 수준으로 복원될지는 미지수이다. ISI는 CIA가 파키스탄의 이해관계를 무시한 채 독자적으로 포스트 탈레반 정권구성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정보제공 대가로 자신들의 허락없이 파키스탄 내에서나, 아프간에서 독자적인 공작을 수행하지 말도록 CIA에 요구하고 있다.
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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