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19일서울대 법대 교수 최종길이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에서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의문사했다. 향년 42세.당시 중앙정보부는 최종길이 ‘유럽 거점 간첩단’의 일원임을 자백한 뒤 죄책감으로 중앙정보부 건물 7층 화장실에서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근래에 이 사건을다시 조사한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양승규)는 지난 8월20일 “당시 수사 기록과 중앙정보부 수사관 등에 대한 조사 결과 최종길교수가 간첩이라고 자백한 사실이 없고 조사 과정에서 고문을 당한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최종길의 직접적 사망 원인이 고문인지는 확실치않지만, 당시 중앙정보부의 발표가 대부분 허위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최종길은 충남 공주에서태어나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 스위스 취리히 대학, 독일 쾰른 대학에서 공부하고 1962년부터 서울대 법대에서 가르쳤다.
그는 박정희가 1972년 ‘10월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수립한 유사파시즘 체제에 비판적 태도를 보였고, 1973년 10월 서울대 법대 교수회의에서 총장과 교수진이유신 반대 시위로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최종길이 소위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의 수사 협조 요청을 받고 중앙정보부에 자진 출두한 것은 이 일이 있은 직후인 10월16일이었다.
그는 그로부터 사흘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사건 이듬해인 1974년 12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최종길의 추모 미사에서 그의 죽음이 전기 고문에 따른 심장 파열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아직 정확한 직접적 사인이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죽음이 비판적 지식인에 대한 군사정권의 증오와 관련돼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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