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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아프간공격 / 美,단독-합동 '양동 지상戰'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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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아프간공격 / 美,단독-합동 '양동 지상戰'유력

입력
2001.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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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집권 탈레반 정부의 방공망을 사실상 초토화, 대대적인 지상군투입이 가시권에 들어서고 있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7일 “공습으로 탈레반 방공망이 분쇄되는 등 지상군 공격을 위한 길이 열리고 있다”며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을 심판하기 위한 그물망을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조이고 있다”고 밝혔다. 미 합참 작전 부국장인 존 스터플빔 소장도 “전투기는 물론 낮은 고도로 비행하는 특수작전용 AC-130 지상 근접 공격기에 대한 어떠한 반격도 없어 자유자재로 공격하고 있다”고 말해 탈레반 방공망이 무너졌음을 시사했다.

부시 대통령이 ‘지상군 공격의 길이 열렸다’고 언급한 것은 보안과 비밀이 생명인 지상 특수부대의 투입 작전이 임박 또는 이미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미국 ‘최정예’ 특수부대인 델타포스와 영국 육군의 SAS 요원들이 이미 아프간에서 빈 라덴 추적 작전 등을 펼치고 있다는 보도도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은 18일 수도 카불과 북부 최대 전략 요충인 마자르-이-샤리프, 탈레반 사령부가 포진한 남부 칸다하르를 집중 공습하는 등 지상군 투입을 위한 마지막 정지작업에 나섰다. 이와 함께 아라비아해에서 지상군 투입을 위한 해상기지 역할을 맡을 항공모함 키티 호크호에는 각종 헬기와 특수부대 병력이 빼곡이 대기한 채 ‘투입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이들 거점공략과 관련, 마자르-이-샤리프는 반군 북부동맹이 점령케 하고 칸다하르는 공습에 이은 특수부대 투입이라는 단독 작전, 카불은 공습과 북부동맹의 진격 등 합동 작전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미국은 마자르-이-샤리프5㎞까지 진격한 북부동맹과 탈레반이 연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데도 탈레반 진지에 대한 공습은 자제하고 있다. 북부동맹측은 “탈레반은 이지역에 정규군의 절반인 2만 명을 배치하고 있다”며 “미국의 맹폭에도 불구, 북부동맹의 진격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측은“탈레반 세력 무력화가 1차 목표”라고 말하면서도 반군의 ‘수일내’ 점령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 최정예부대인 55여단의 3,000명 병력이 진을 친 칸다하르의 사정은 다르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 지역의 북부동맹은 탈레반을 이길 만한 병력도 전략도없다”며 불신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따라 탈레반 군사기지들을 공습으로 무력화시킨 뒤 특수부대 요원을 직접 투입할 전망이다. 또 미국이 탈레반진지를 공습한 카불의 경우 전천후 공군기지인 바그람 함락을 위해 미국과 북부동맹이 사실상 합동 작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공습만으로는 탈레반 정부를 붕괴시킬 수 없다는 건 이미 증명됐다”며 “미국은 탈레반 붕괴 이후를 상정한 복잡한 정치적 역학 구도와 관계 없이 단독 또는 북부동맹과의 합동작전을 통해 지상군을 투입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종수 기자

jslee@hk.co.kr

■마자르 이 샤리프 어떤곳

탈레반과 북부동맹 반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북부 마자르-이-샤리프는2,000여 년 역사의 기억을 간직한 유서 깊은 도시다.

기원전 328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점령된 후 아랍, 페르시아, 몽골, 모굴제국을 거쳐1989년 소련군이 물러갈 때까지 동과 서의 무수한 정복자들이 이 도시를 휩쓸고 지나갔다. 마자르-이-샤리프는 ‘성자(聖者)의 무덤’이라는 뜻. 15(또는 12) 세기에 예언자 마호메트의 사촌동생이며 사위인 알리(600?~661)의무덤이 이곳에서 발견됐다는 아프간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무덤 발견 이후 티무르왕조가 이곳에 그 유명한 ‘푸른모스크(이슬람 사원)’를 건립하면서 암살당한 4대 칼리프 알리와 그 후계자를 이슬람의 정통으로 떠받드는 시아파의 성지가 됐다. 1,220년에는 칭기즈칸의 침략으로 도시가 거의 폐허가 됐다. 예부터 상업 요충지로 고급 양탄자와 면화가 유명하다.

1979년에는 소련군이 진주, 군사령부를 설치했다.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탈레반과 반군 사이에 탈환과 재탈환이 반복되면서 민간인 수천 명이 즉결처형을 당했다.

이광일 기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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