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과학도들처럼 나도 어린 시절 낡은 연구실에서 생각에 잠긴 아인슈타인의 사진을 보며 감동을 받곤 했다.논문과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책상과, 수식이 아무렇게나 휘갈겨져 있는 칠판을 등 뒤로 아인슈타인은 천진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가 하면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기도 한다.
그의 연구실 풍경은 보기만해도 ‘석학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가 떠난 이후 그의 연구실은 누가 썼을까? 아인슈타인이 마지막으로 책상을 떠난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해 놓았을까?
과학저술가 에드 레지스의 ‘아인슈타인 방의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연구실이 있었던 미국 프린스턴의 고등학술 연구소와 그 곳에서 일했던 천재 과학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책이다.
고등학술 연구소는 아인슈타인 뿐 아니라 쿠르트 괴델, 존 폰 노이만, 로버트 오펜하이머, 에드워드 위튼 등 20세기 과학을 이끈 대가들이 마음껏 과학적 상상력의 나래를 폈던 곳이다.
에드 레지스는 이 책에서 진리를 갈망하고 과학에 중독된천재 과학자들의 무용담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낼 뿐 아니라 20세기 자연과학의 흐름을 짚어주는 친절한 지형도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 특별히 매료된 이유는 때론 소심하고 오만하기도 한 천재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체취 때문이다.
대중들에겐 더없이 겸손하고 소탈했던 아인슈타인도 과학자 사회 안에선 누구보다 고집스럽고 오만한 과학자였다.
저널에 제출한 자신의 논문을 다른 논문들과 똑같이 심사했다는 이유로 다시는 그 저널에 논문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일화는 그의 오만한 자존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 외에도 위인전에 나올 만한 과학자들이 공동 논문의 저자명에 누구 이름을 먼저 넣을 것인가를 놓고 서로 다투는가 하면, 다른 교수들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밀고 당기기를 하는 모습 역시 ‘일상인’으로서의 천재들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묘사들은 나로 하여금 오히려 그들에게 일종의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물리학을 전공한 걸 보면, 나도 그들과 어깨를 겨룰 만한 석학이 되어 아인슈타인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양자역학에 대해 토론하고, 만우절에 폰 노이만을 멋지게 속이는 몽상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에드 레지스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이 떠난 연구실은 그 후 천문학자 베크트 슈트림그렌과 수학자 에른 베어링이 썼다고 한다.
그들은 아인슈타인의 유령이 어깨 너머로 바라보는 것 같은 두려움 없이 아주 편안하게 연구실을 사용했으며, 아인슈타인이 평생 연구했던 ‘빛’이 따스하게 내려 쬐는 그 방의 오후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한다.
/정승재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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