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 / 이성형 지음 / 창작과비평사 발행우리에게 라틴아메리카는 어떤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의 영화 ‘아바나’는 미국인들이 혁명 전야의 쿠바 수도를 향수 어린 연애놀음으로 치장한다.
어릴 적부터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래 ‘라 팔로마’의 가사는 아바나 항구를 떠나는 뱃사람이 사랑스런 치니타(중국계 매소부ㆍ賣笑婦)와의 이별을 애절해하는 내용이다.
‘라 팔로마’의 첫구절인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를 책 제목으로 삼은 이성형(42)씨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이라고 비판한다.
하기야 19세기의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도 ‘나의 아이여, 나의 누이여/ 그곳에 가서 함께 지내는/ 감미로움을 꿈꾸어 보렴’이라며 중남미에 대한 이국취미적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씨의 이 책은 이러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우리의 피상적 인식을 걷어내려 한 생생한 현지 여행기다.
저자는 지난해부터 2년간 쿠바 페루 칠레 멕시코를 여행하며 직접 체험한 그곳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유려한 문체로 보여준다.
승합차를 타고 아바나로가는 길가에 ‘혁명이여 영원하라’고 쓰여진 입간판이 있었다.
저자와 동승한 50대 멕시코 남자는 “도적질이여 영원하라”고 우스개를 했다. 아바나 시내 건물에 거대하게 새겨진 체 게바라 얼굴 모양의 철골 구조물, 후지모리가 떠난 페루의 사회현실, 세계를 뒤흔든 독재자 피노체트의 재판사건 등을 통해 저자는 이 지역 사람들의 정치경제적 현실도 개괄한다.
“우리의 인식과 관계없이 라틴아메리카는 한국과도 오랜 연분을 지닌 곳”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강원도 감자와 매운 한국 고추, 옥수수 같은 음식뿐 아니라 ‘맘보’ ‘차차차’음악도 그곳에서 기원했다.
신대륙으로 발견된 뒤 300여 년간의 스페인 지배, 다시 미국의 절대적 영향권 아래 들어갔으면서도 잉카와 아즈텍에 뿌리를 두고 면면히 살아있는 이 지역의 문명 전통을 하나하나 증거해 보인다. “‘세계화’를 미국화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세계화는 장사꾼들이 주장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 뒤섞임으로 이루어진 ‘잡종화’이다”는 저자는 이 책이 “여전한 미지의 땅 라틴 아메리카의 문을 여는전주곡 1번의 역할을 하기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라틴 아메리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국제지역원에서 강의 중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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