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 무심코 강의동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게시판 위에 붙어 있던 포스터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00과 '열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열분'이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해서 내심 후속 포스터를 기다렸다. 그러다 일주일쯤 지나서야 '열분'이 '여러분'의 약자임을 깨닫고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던 적이 있다.
지난 주엔 '나의 일상'을 주제로 학생들이 제출한 에세이를 읽던 중 '오늘따라 내 남자 친구의 모습이 유난히 허접스럽게 느껴졌다'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허접스럽다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 궁금해서 학생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더니 저희들끼리 키득키득 웃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대답 대신 덧붙이길 자기들도 고등학생들이 쓰는 말은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었다.
이제 '세대 차'는 우리 일상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녹아 들어와 있는 듯 하다. 나만 해도 전화 응답기에 남긴 메시지만 듣고서 목소리의 주인공이 몇 학년인지 거의 정확히 맞출 수 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00입니다. 나중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이건 4학년이고, "교수님, 지금 자리에 안 계시네요. 제 연락처를 알려드려도 좋은지 모르겠는데 제 번호는 **입니다. … 그래도 제가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이건 3학년이다.
"교수님, 저는 00입니다. 제 휴대폰 **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건 2학년이고, "교수님, 이 전화 받는 대로 제게 연락 주세요. 번호는 찍습니다." 하면 1학년이다.
적당한 기다림에 익숙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미덕으로 배워온 아날로그 세대로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속도감에 익숙하고 솔직함과 당당함을 미덕으로 주장하는 디지털 세대와 부딪칠 때면, 솔직히 어찌해야 좋을지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세대는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상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절실해지고 있다.
미국의 인구학자 토레스-길은 21세기 인류가 직면하게 될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대간(間) 공존'이라 주장하고 있다.
2030년경이 되면 4세대는 기본이고 역사상 유례가 없던 5세대 사회의 출현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세대간 공존과 공유를 준비해야 하는 과제가 던져졌음에도, 여전히 세대문제로 인한 분란과 반목을 적지 않이 겪고 있기에,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어려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오늘날 우리의 세대문제는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필요성을 굳이 절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대단절'의 성격을 보이고 있는가 하면, 과거 기성세대가 누리던 권력과 권위의 양도를 요구하는 '세대비약'에 까지 이르기도 하고, 고도 소비사회의 꽃이라 불리우는 광고를 통해 각 연령 집단을 잠재적 구매 대상으로 설정하여 X세대 Y세대 N세대 i세대 등 다양한 인공세대를 확대 재생산해 가고 있기에 드는 생각이다.
이제 세대 공존을 위한 첫 출발은 세대별 경험의 다양성을 상호 인정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리라.
각자 자기 세대의 경험을 기준으로 다른 세대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왜곡하기보다는, 각 세대별 경험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해주는 유연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다만 세대별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위·아래 구별 없는 무질서나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무원칙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할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의 통합과 획일을 혼돈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함은 물론이다.
세대 문제에 묘미가 있다면 그건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 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영원히 젊음을 누릴 수는 없기에, 우리 모두는 길고 긴 생애주기를 헤쳐가는 동안 필히 세대간 공존을 준비하고 연습해야 하리라.
/함인회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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