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세계를 뒤흔드는 테러와 탄저병 공포는 언제, 어디서 테러가 발생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누구라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 강도가 한층 증폭되고 있다.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가변성은 언제나 공포와 불안의 근원이다.
불확실성은 경제와는 특히나 상극(相剋)이다. 미래를 내다보기 어렵다면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고 개인들도 소비를 줄이기 마련이다.
요즘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이다. 국가경제의 불확실성은 정부 정책에 의해 가장 좌우된다. 정부정책이 모든 경제 주체들이 신뢰하고 ,항상 예측 가능한 것이라면 경제는 스스로 잘 굴러가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고장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수 백만대의 차량이 서로 뒤엉켜 사방으로 내닫는데도 교통사고가 나지 않는 이유는 모든 운전자들이 신호등이 주는 신호에 따라 질서있게 행동하기때문이다. 정부 정책은 이 같은 신호등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 경제 정책들은 신호등 기능에 심각한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설익은 정책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 혼란을 주는가 하면 기존 정책들도 일관성이 없이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 흔들려 종잡을 수 없게 한다.
주식투자로 손실을 입을 경우 세금공제를 통해 보전해준다는 새로운 장기주식투자 상품 논란이 그 대표적인 예다.
다행히 논의단계에서 무산되긴 했지만 이 제안은 그 발상 자체만으로도 정부정책에 대한 심각한 불신의 상처를 남겼다.
시장 메커니즘의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정부가 어떻게 개인의 주식투자 손실을 국가재정으로 메워준다는 발상을 할 수 있냐는 개탄이다.
흔들리는 재벌정책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5+3' 이라는 재벌정책의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받들던 정부가 이제는 스스로 정책의 폐지 및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기업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경우 1998년 2월 폐지됐다가 1년반만에 다시 부활했는데 1년 유예를 거쳐 실제 시행이 되기도 전에 다시 폐지될 운명을 맞고 있다. 같은 정부 하에서 불과 3년 사이에 폐지-부활-폐지라는 극단적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재벌정책을 완화하는 명분은 규제완화다. 밖에서는 물론이고 이제는 안에서도 세계적 기업들과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푸는 일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업들에게 규제보다 더욱 피해를 주는 것은 정부의 일관성 없는 행동이다. 똑 같은 사안에 대해 어떤 때는 규제완화를 한다며 풀어주고, 얼마 뒤에는 재벌개혁을 한다며 규제를 한다면 이를 수긍할 기업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입으로는 규제완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규제를 오히려 강화하려는 것이 관료주의의 속성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대기업지정제도와 출자총액제도의 폐지를 요구하고 나서는 전례 없는 사태가 벌어질 만큼 재벌정책이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것은 정책의 문제점보다 정부의 원칙 없는 제도 운용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경제정책이 어디로 뛸 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면, 아무리 경기가 좋아진다 해도 우리 경제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배정근 경제부장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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