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10도로 쌀쌀한 날씨에 바람마저 부는 강원 홍천군 서면 마곡리 강가.15일 오후 4시 홍천강 수온은 오싹함을 느낄 만큼 차갑다.한 여자 탤런트가 “너도 솔직했으면 해!” 라는 대사와 함께 강 속으로 들어간다. 30여 명의스태프가 숨을 죽이며 쳐다보고 있다. 이내 목까지 물이 찬다.
또 한 사람이 “너 뭐 하는 거야”라며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물에 잠긴 여자를 꺼낸다. 몸을 아끼지 않고 차가운 물 속으로 뛰어들며 리얼한 연기를 보여준 두 탤런트에게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아버지와 아들’ 후속으로 11월 3일 첫 방송될 ‘화려한 시절’(노희경 극본, 이종한 연출)에서 남녀 주연을 맡은 박선영과 지성은 주연 신고식을 이처럼 힘들게 치루었다.
물속에서 나오자마자 코디네이터와 매니저들이 두터운 파커와 담요를 갖다 준다. 곧바로 키스장면이 이어져 추위를 녹일 틈도 없다.
하지만 입술을 덜덜 떨면서도 박선영은 마스카라를 칠한다. 프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박선영과 지성은 이종한 PD가 “잘 했다”는 말을 건네자 다시 물에 안 들어가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1970년대 초반 이태원을 무대로 대학생(지성)과 ‘날라리여자’ (박선영)의 사랑과 중년(박근형과 박원숙)의 사랑을 끈끈하게 그릴 ‘화려한 시절’ 의 첫 녹화는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됐다. 이날 박선영과 지성은 똑 같은 대사와 연기를 매 장면마다 5번 이상 반복했다.
스튜디오로 눈을 돌려 보면 30년 이상 연기를 한 박근형 박원숙 김영옥 김지영등이 10여 차례 똑 같은 연기를 한다.
모처럼 백수건달 역을 맡은 박근형은 ‘폼생폼사’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연기를 하지만 좀처럼 이PD의 OK사인이 나지 않는다.
과부로 세 자식을 키우는 박원숙도 아이들에게 야단치는 장면을 7차례 반복 연기했다. 그래도 연기자들은 불만이 없다.
박근형은 “연기자는 최선의 연기와 화면을 시청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연기자의 밥벌이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날 마곡리 강가에서 물에 들어가는 장면 촬영에 소요된 시간은 두 시간. 시청자들이 한순간 볼 장면을 찍기 위해 걸린 시간이다.
“시청자는 정직하다. 정성을 들이고 고생을 하면 틀림없이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 내용을 공감하며 볼 것이다.” 이 PD의 말이다.
지성 박선영 류승범 공효진 등 젊은 탤런트와 박근형 박원숙 강성우 김보연을 비롯한 중견 연기자들은 작가의 이름만 보고 캐스팅에 응했다고 한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거짓말’ ‘바보같은 사랑’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 받고 마니아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노희경이다.
연기자들은 “노희경작가의 작품이라면 시청자에게 감동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청률보다 소중한 것이 드라마가 주는 감동이라는 생각에 기꺼이 출연했다”고 입을 모았다.
/배국남기자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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