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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내 주변의 근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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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내 주변의 근본주의

입력
2001.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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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K교수가 어떤 인터넷 매체와의 회견에서 '당면한 경제위기'를 진단했다. 그는 우리의 경제위기가 반도체 값 하락 등 외부요인 탓으로 초래된 것이 아니라 산업경쟁력의 붕괴라는 내부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탓이라고 주장했다.산업경쟁력이 무너져 내린 것은, 그에 의하면, IMF가 상징하는 '채권자의 논리'와 토플러가 상징하는 '정보통신 논리'에 우리가 맹목으로 속아넘어간 결과라고 한다.

그는 또 DJ개혁을 망친 3대 주범을 가신ㆍ관료ㆍ자민련 순으로 꼽았다. 놀라운 것은 '가신'을 제1순위로 지목한 사실이다. 그는 "고려 때 환관정치를 생각나게 한다"고 가신의 행태를 비판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거들떠 보지않기'-코리아 패싱 현상이 심화하고 있음을 그는 크게 걱정했다. "전세계의 고급정보, 기술, 돈, 인력이 몰리는 '코리아 센터링'이어도 모자랄 판에 현실은 거꾸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인은 정권, 정부가 스스로의 개혁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해 온 데 있다고 그는 본다. 가신정치의 온존도 그 하나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해 연말 이래 곳곳에서 '촉구'되고 '약속'된 국정쇄신의 그림을 제대로 보여준 일이 없다. 비서실장 출신의 당대표 '박기'로 DJ정치의 가신 의존체제는 더 딴딴해졌다.

권력형 비리 사건 때마다 '냄새'가 난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 장본인들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계보를 해체하라는 안팎의 요구에 대해서는 "우리가 빠진 민주당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거나"우리 계보가 곧 집권당 자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대로 권력의 사유화(私有化)는 몰라도 집권당을 사물시(私物視)하는 태도는 확인할 수 있다. 독점적이고 배타적, 비타협적이라는 점에서 우리 주변의 대표적인 근본주의 현상이다.

어디, 여객기를 몰고 빌딩에 돌진하는 테러리스트 만이 근본주의인 것은 아니다.

테러리즘을 응징하기 위해 '수백 배로 규모가 확대된 테러리즘'일 뿐인 전쟁을 수행하는 세계유일 초강국의 자가당착도 또다른 근본주의의 모습이다.

근본주의는 본래 19세기말 20세기 초 미국 개신교의 보수주의 운동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성서의 완전 무오류설, 축자영감(逐字靈感)설이 그 핵심이다.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성서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유주의적 성서비평 흐름과 진화론에 대한 방어와 투쟁을 통해 성장해오다가 칼 매킨타이어, 빌리 그레이엄에 이르러 '반공'투쟁도 가세됐다.

지금은 '도덕적다수'운동을 이끌면서 낙태, 동성연애반대 등에 앞장서고 있는 제리 파웰목사가 근본주의의 대표격이다.

파웰목사는 9.11 테러 이틀 뒤 TV에 출연해서 "미국이 이런 테러를 당한 것은 당연하다"는 말로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자유주의자들, 낙태시술자들, 동성애자, 인권옹호론자들, 학교내 예배 금지를 판결한 연방법원 판사들이 그동안 하느님을 분노하게 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중요한 관점은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거나 국가 장래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는 때에 종교적인 근본주의가 발흥했다는 사실이다.

21세기를 살고있는 오늘 날은 특히 모든 종교에서 근본주의적 경향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주목할 현상이다.

우리 주변엔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신 단군상을 '목따러'다니는 근본주의자들이 횡행한다.

남의 문화, 남의 종교, 남의 구원은 인정하지 못한다. 내 것만이 옳다. 내 마을에 장례식장은 안된다는 "결사 반대"에서 보궐선거장, 정당, 국회를 휩쓰는 모든 "결사적 대결" 에 이르기 까지, 근본주의 망령이 곳곳에서 너울 댄다.

남에 대한 배려, 더불어 사는 이웃으로서의 관용, 전쟁이 아닌 새로운 사고와 행동 양식이 절실한 세상이다.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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