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호언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이후 일본은 자금을 회수했고 이는 IMF의 한 원인이 됐다. 일본을 강하게 욕할수록 박수를 받지만 과연 그게 국익에 도움되는 지는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16일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된 아쉬운 심경을 이렇게 털어 놓았다.
이 관계자는 “우리라고 일본에 할 말이 없겠느냐”면서 “일본과 문을 닫고 살자는 게 아니라면 험하게 비판하다가도 다시 대화를 하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방중 때 차분하게 대응했던 사례를 소개하면서 “마냥 강경한 것이 능사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특히 고이즈미 총리의 국회 방문을 무산시킨 야당의 처사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국회 방문 취소에 대단히 화를 냈다는 후문이다.
박지원(朴智元) 정책기획, 유선호(柳宣浩) 정무, 오홍근(吳弘根) 공보수석은 이구동성으로 “야당이 고이즈미 총리의 국회 방문을 물리적으로 저지하기 보다는 만나서 당당하게 따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등은 “의원들이 고이즈미 총리와 대좌해 역사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 꽁치 조업 등 3대 현안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강력히 제시했어야 했다”면서 “그것이 외교적 예의를 지키고 정부도 도와주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한 외교당국자도 “외국 정상의 국회 방문을 협박으로 저지시킨 경우를 본 적이 없다”면서 “우리 정치권이 정쟁에 매몰되다 보니 외교적 결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에 대한 인색한 평가에도 청와대는 이의를 제기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교과서 문제는 고친다는 것을 전제로 공동연구기구를 만들기로 했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는 무명용사 묘지처럼 누구나 참배가 가능한 장소를 마련하겠다고 했다”고 평가했다.
김 대통령은 또 “일본이 꽁치문제는 고위급회담으로 풀자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비자면제, 항공기 증편, 돼지고기 수출에서 성의를 표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본을 100% 굴복시킬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며 “우리의 의지를 보이고 상대가 성의를 표시하면 다시 손을 잡는 게 외교”라고 말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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