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만년설을 꿈꾼다. 더이상 밝을수 없는 순백의 눈과 맑다 못해 검푸른 하늘의 대비. 그 광경을 직접 볼 수 있다면, 그곳에 제발로 설수 있다면…가까운 만년설은 일본의 후지산에도 있지만 웅장한 산맥의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온통 시야를 눈과 하늘로 채우고 싶은 욕심에 시선은 더욱 먼곳을 향한다. 히말라야, 로키, 알프스, 안데스가 그런 곳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 네팔과 스위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곳 중 하나다. 어디가 더 좋은가는 말하기 힘들다.
마치 지리산 천왕봉과 설악산 대청봉을 두고 어디가 좋으냐 따지는 것과 같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산록과 알프스 융프라우를 트레킹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공항에서 프로펠러가 달린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향한 지 한 시간이 채 못 돼 포카라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10분 가량 달리자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1970년대 우리나라 어느 구석 시골마을 같은 느낌의 도시.
비포장도로와 정리 안 된 상가들이 오히려 푸근함을 준다. 10달러 정도의 호텔비와 100루피(한화 2,000원) 안팎의 레스토랑식사가 부담이없다.
나이 많은 여행객은 호수에서 보트를 즐기며 물에 비친 안나푸르나(8,091㎙)를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한다. 그저 쉬기만 하며 한 3일을 보내기에도 충분한 곳이다.
트레킹은 이곳에서 버스로 30분거리에 있는 나야풀에서 시작한다.
버스라고 해야 운전석을 빼곤 창문이 거의없고 짐싣는 지붕에 사람이 타기도 하는 폐차 직전의 모습이지 만그 또한 이곳만의 즐거움이다.
구겨진 냄비에 물과 음료수를 담아 파는아이, 볼펜과 약을 달라며 따라붙는 아이들을 만나며 이곳이 네팔임을 실감했다.
크고 작은 시냇물을 건너고 짐을 실은 나귀들을 피하며 샤울리바자르, 킴체를 지나간드룩(1,939㎙)에 도착했다.
안나푸르나 남면을 보며 올라가는 길은 한가을인 10월 초였지만 주변 모습은 꽃이 만발한 초봄의 하루였다.
저녁 서늘한 기운을 두꺼운 옷으로 막으며 한 로지에 들어갔다. 전기는 닿지 않는 곳이었지만 태양열을 이용한 더운물 목욕을 할수 있다.
3달러 가격에 비해 호화롭기까지한 트윈베드의 독실에는 막 삶아빤 듯한 시트가 덮여 있었다. 룸서비스도 가능하지만 가이드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뜨거운 록시(Roxy, 데워 마시는 청주)로 몸을 덥히며 이후 일정을 논의했다.
이튿날 아침 창문을 열어보니 로지 아래 잔디에는 드문드문 텐트가 보이고 저너머로 ‘물고기 꼬리’라는 뜻의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모양을 드러냈다.
햇빛에 반사된 만년설은 꼬리모양 그대로 납작하고 날카롭게 안나푸르나 산군의 기운을 전하고 있었다.
타다파니(2,595㎙)와 반탄티(2,520㎙)를 지나 고레파니(2,750㎙)에 이르는 길은 흡사 정글을 지나는 느낌이다.
일교차가 20도나 되기 때문에 한낮에는 반소매 셔츠만 입어도 연신 땀을 훔치며 걸어야했다.
야생 원숭이떼를 스치기도 했고 코앞의 봉우리를 두고 200여㎙ 계곡을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야 하는 험한 길이 이어졌다.
작은 구비를 돌때마다 눈쌓인 산은 고개를 내밀고 그 모양은 약간의 이동만으로 도전혀 다른 산처럼 변화무쌍했다.
우거진 숲과 타잔이 나올듯한 넝쿨지역을 지나 데우랄리(2,987㎙)에 오르면서 서늘한 구름이 시야를 막았고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어야 했다. 12월이면 눈이 허리까지 쌓이는 곳이다.
다음날 새벽 5시께 가이드가 문을 두드렸다. 동트는 새벽을 보기 위해서다. 두껍게 옷을 껴입고 푼힐(3,193㎙)로 오르는 길은 랜턴 불빛으로 줄을 이었다.
1시간쯤 올라 넓은 봉우리에 서니 그 앞으로 다울라리기 산군이 병풍처럼 시야를 검게 둘러쌌다. 그리고는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햇빛에 산은 퍼런색에서 노랗게, 하얗게 옷을 갈아입었다.
순식간이었다. 매일 일어나는 자연의 일상이건만 지켜본 여행객에게는 감격스런 모습이었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끌어안고 악수하며 환호하게 만들었다.
티벳 난민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며 반탄티(2,300㎙),울레리(1,960㎙)를 향했다. 하산길이다. 구비구비 돌 때마다 보이는 하얀 봉우리들은 눈앞의 만발한 꽃들과 묘하게 어우러지며 계절을 망각하게 한다. 한쪽엔 민들레꽃이 뿌려진 듯 널려있고 계곡 저편엔 벚꽃처럼 보이는 꽃단지가 한 무더기다.
커다란 짐 끈을 머리에 걸고 지나는 맨발의 셰르파들을 비켜서며 한 번씩 호흡을 두르면 내려서는 발길이 아깝기만 하다.
자꾸 돌아보는 저너머 만년설이 언제 다시 내 앞에서게 될까하는 아쉬움이다. 점심식사를 즐겁게 해주던 힐레(1,475㎙)주민의 전통악기연주도, 마주치는 트래커들과의 즐거운 대화도 다른 곳에선 느끼기 어려운 그곳만의 즐거움이다.
원유헌기자
■기차로 오르는 유럽 최정상 - 스위스 융프라우
스위스 인터라켄 오스트역에 내린 것은 저녁무렵이 다 돼서였다.
시가지가 있는 베스트역 근처까지는 1.5㎞ 정도. 융프라우때문에 유명해진 이 곳은 오스트(동)역과베스트(서)역을 잇는 길주변이 마을의 전부일 정도로 작은 도시다.
호텔들이 몰려있는 베스트역 근처에는 마차들이 부지런히 관광객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빅토리녹스사의 다용도 칼(일명 맥가이버칼)과 전통인형, 자수용품이 상점바깥으로 넘쳐나고 거리의 사람들도걷기 보다는 들여다 보기위해 서성거렸다.
전통음식인 퐁뒤를 맛본 뒤 엄청난 물가의 뜨거운 맛도 함께 느껴야 했다. 숙소의 TV는 융프라우와쉴테호른의 기상상태를 생방송으로 보여주고 인터라켄에서 즐길수 있는모든 레저를 설명하고 있었다.
주변산과 어울리는 아침 호수주변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자전거를 빌려 타는것도 괜찮다. 오전만 이용하는데 21스위스프랑(1만6,000원).
어느 곳을 둘러봐도 기분좋을 수밖에 없는 경치다. 인터라켄은 그 이름의 뜻대로 툰 호수와 브린츠 호수를 끼고 있다.
루체른에서 출발한 산악노선의 유람선과 슈피츠를 오가는 호수 노선이 드나들고 또다른 유람선이 한시간 간격으로 호수 주변을 오간다. 이렇게 저렇게 노닐다 가기만 해도 손해 볼 게 없는 곳이다.
오스트역을 출발해 40분이 채안 돼 도착해 그린델발트(1,050㎙)에 도착했다.
겨울철이면 아스팔트를 제외하곤 모든곳이 스키장이되는 곳이다. 아래로 고요한 산간마을이 보이고그 앞에 산악인들의 또하나의 꿈인 아이거 북벽이 버티고 있다.
조금은 무섭게도 보이는 위용에 짓눌리며 피르스트(2,168㎙)로 오르기 위한 곤돌라를 탔다. 운행거리만 4,355㎙.갈아타지 않고도 30여 분을 매달려 가야한다.
피르스트에서 그린델발트를 향해 트레킹을 시작했다. 두려워 보이던 아이거북벽은 내려오다 보니 오히려 따뜻한 인상으로 앞길을 안내했다.
구두만 아니라면 가벼운 차림으로도 충분히 절경을 즐기며 걸을만 했다. 호주에서 왔다는 60대 노부부는이 지역트레킹에 반해 일정을 일주일늘렸다며 자랑했다. 눈 쌓인산을 끼고풀을 밟으며 걷다 보니한 시간반만에 다시 그린델발트로 돌아왔다.
기차를 타고 다시 클레이네샤이데크를 거쳐 융프라우로 올랐다. 1912년에 개통했다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철도 시스템이다.
마지막 터널구간에서는 안내방송이 8개국어로 서비스되는데 한국어 방송이나올 때소리지르는 사람이꽤나 많았다. 한국 사람이 많다는 얘기고 또 그러니 서비스를 하는것일 게다.
유럽의 최정상이라는 융프라우를 이리도 쉽게 오르니 좋기만 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4,158㎙라는 높이에 빠르게 올라온 때문에 고소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다.
9월 중순의구름 낀날씨에 바람은 불었지만 사람들은그 높은곳의 공기를 마시며 즐거워했다. 빙하와 만년설에 시선을 묻은채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융프라우에서 무료 눈썰매장과 개썰매장, 스키 스노보드장을 이용할 수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다시 기차를 타고 라우터브루넨(806㎙)으로 향했다.
내려오는 내내 사람들은 제자리에 앉아 있지못했다. 어떻게든 몸을 더 기울여 창밖의 설경을 담아두려는 생각에서다.
이쪽편을 보다가 저쪽편을 놓칠까봐 또자리를 옮기고, 또 그렇게 반복하기를 수차례하며 내려온다. 그린델발트가 유스호스텔이있는 곳이라면라 우터브루넨엔 캠핑장이있었다. 크고 작은 폭포와 함께 캠핑장 자체가 하나의 명물이 된 곳이다.
또 해발 2,967㎙의 쉴트호른 전망대를 이용할 수 있어 최근에는 융프라우 대신 이쪽 방향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유럽 지역 젊은이들은 신혼여행으로 이곳에서 캠핑하는게 유행이라고도 한다. 인터라켄은 래프팅,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등 레저도 원없이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모든 것이 조화로웠다. 눈 쌓인 산과 푸른 들녘, 강과 호수를 낀 자그마한 마을, 작지만 힘있는기차들, 적응하기보다는 극복하며 사는 사람들. 제네바로 가기위해 베른으로 출발한 새벽기차도 내내호수의 푸르름을 곁에 두며달렸다.
/원유헌기자youhoney@hk.co.kr
■여행가이드
▼네팔
우리나라에서 네팔로 가는 항공편은 일반적으로 홍콩 경유와 방콕 경유, 상하이 경유노선이 있다. 홍콩 경유노선은 홍콩에서 카트만두행이 매주화, 목, 토 3회 운항하고, 방콕 경유노선은 월, 화, 목, 금 4회 방콕발 로열네팔항공을 운항한다.
귀국편은 카트만두발 홍콩행이 화, 목, 토요일에 있고 카트만두발 방콕행은 화, 수, 금, 일요일에 있다.
몬순 계절인 6월에서 9월 사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계절이 여행하기에 알맞은 편이다. 일반관광객과 트레커들이 몰리는 시기는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네팔 비자는 주한 네팔대사관과 카트만두 현지 공항 두 곳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비자신청서에 내용을 기입하고 여권사진 2매를 주면 된다.
체류 15일까지는 15달러, 체류 30 일까지는 30달러이다. 성수기에는 한국영사관 직원이 공항에 직접나와 비자신청을 돕기도 한다.(한국대사관 977-1-270172)
국내 여행대행사로는 에베레스트여행사(02-723-8848)와 네팔항공(02-756-2161) 등이 있으며 패키지 상품과 함께 다이어트프로그램 트레킹도 선보이고 있다
인도등지를 여행하다가 준비없이 네팔로 들어가는 경우 한국인들이 이용하기 좋은 현지여행 대행사들이있다.
윈드호스 트레킹(977-1-244118), 아시안 트레킹(977-1-413732), 안나푸르나 트레킹(977-1-12736) 등이 1990년대 이전부터 한국 등반대들이 많이 이용했던곳.
카트만두 타멜거리에 있는 빌라에베레스트(977-1-413471)는 산악인 박영석씨가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해외원정대가 많이 이용하고 있다. 1층에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
국내에서 스위스로 취항하는 항공편은 취리히로 들어가는 대한항공 직항편과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제네바로 입국하는 네덜란드항공(KLM) 등이 있다.
파리에서 제네바까지는 떼제베(TGV)편으로 3시간 30분 가량. 제네바에서 베른을 거쳐 인터라켄으로들어가는 데는 3시간 내외가 걸리며 유레일패스가 없을 경우편도 65스위스프랑(약5만2,000원)을 받는다.
스위스는 헌법상에 공용어로 인정하는 언어가 네 가지다.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 여기에 영어도 자유롭게 통하는 걸볼 때 작은 나라에서 5개국어가 통용되는셈이다.
인터라켄은 워낙 작은 도시라 시내에서 교통편을 이용하는 게 무의미하다.
인터라켄을 상징하는 융프라우에 오르기 위해서는 거의 예외 없이 철도를 이용한다. 왕복 요금은 162스위스프랑(약13만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대부분 국내에서 할인쿠폰을 구해 115스위스프랑에 이용한다.(동신항운, 02- 756-7560)
베스트역 근처의 미그로스라는 대형 매장에서 식료품을 구입해야 싸다.
한식이 먹고싶다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간이 중국음식점인 미스터홍(Mr.Hong. 41-33-823-5544)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비교적 싼 값에 쌀밥을 먹을 수 있다. 다용도칼과 쇠방울, 초콜릿 등 이이곳 명물이지만 본고장이라 하더라도 가격은 만만치않다.
스위스는 유럽연합에 속해 있지 않다. 때문에유로 여행자수표를 사용하면 많은 손해를 볼 수 있다. 또 이곳에서 구입한 물품에 대한 면세조치는 반드시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 전에 받아야 한다.
국내여행대행업체로는 닥터트래블여행사(02-521-0573) 등이 있으며 배낭여행상품과 함께 신혼여행 상품도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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