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한국 방문이 경색된 양국 관계를 복원하는 데는 실패했다.짧은 일정도 문제였거니와 그 보다는 양국간에 존재하는 역사인식의 갭이 너무 현저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게 성사된 고이즈미 방한이 합의문은 커녕 공동 언론 발표문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각각의 기자회견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결과론적 얘기지만 심각한 견해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 뭣하러 정상회담을 수용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외교부가 이번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판단하지 않았나 생각되는 대목이다. 주무국장이두 차례나 일본을 찾아가 구걸하듯이 매달렸지만 일본의 자세가 요지부동이었던 점이 이를 증명한다.
차라리 양국이 좀 더 여유를 갖고 충분한 조율과정을 거친 후에 '방한'을 수용하고 그런 이해의 바탕 위에서 타결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지난 4월 교과서 왜곡문제로 균열을 보인 양국관계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최근 꽁치어장 파동을 거치면서 사상 최악의 상태에 있다.
여론도 일본의 역사인식이 바뀌기 전에는 고이즈미 방한 수용 반대쪽이었고, 정부도 이 같은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그러나 미 테러 참사 후 정부는 양국간의 장기적 외교공백이 이롭지 않다고 보고 그에게 결자해지 방한을 양해하지 않았나 보여진다.
정부는 고이즈미가 방한하면 과거사에 대해 '진일보한 언급' 을 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강한 반대 여론을 무마하고 정부의 자세변화를 희석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지금까지 외침ㆍ조국분단 등 참기 힘든 곤경과 수난 속에서 (한국민들이) 받은 고통은 저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옆구리 찔러 절 받은 꼴'이다. 사과의 수준도 95년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나 98년 한일 파트너십 천명과 별로 다르지않다.
정부가 무엇을 믿고 '진일보' 운운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대신 고이즈미는 한국인의 고통이 일본의 침략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물타기' 했다.
고이즈미 방한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냉각상태가 길면 길수록 모두에게 손실이라는 점을 양국은 깨달아야 한다.
특히 산업 전반에 국제적 협력이 긴요한 우리에겐 큰 손실 요인이다. 내년 6월 양국은 월드컵을 공동개최하기로 돼 있다.
성공적 개최를 위한 대 테러 방지 대책 등 양국이 협의해야 할 사안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러나 결자해지의 책임은 일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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