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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하루 2~3통 이력서…두드리니 열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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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하루 2~3통 이력서…두드리니 열리더라"

입력
2001.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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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IMF세대 김수영씨 취업기꼭 4년 전 이맘때다.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그 때, 신문은 연일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불길한 예언이 적중하듯, 얼마 못 가IMF 사태가 터졌다.

공황, 불안, 위기감…. 돌이켜 보면 온통 회색 빛 기억뿐이다. 요즘도 가끔씩 조바심을 치면서 이력서를 쓰는 꿈을 꿀 때가있다. 정말 ‘악몽’ 같은 시절이었다.

2학년 때부터 틈틈이토익과 영어회화를 준비했다. 또 1년을 휴학해 가며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러나 그런 준비가 아무 것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취업지망생들이 최소의 요건으로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고, 특별한 자격증 하나 없는 내게 IMF 상황에서의 취업이란 넘을 수도, 뚫을 수도 없는 ‘벽’처럼 다가왔다.

거의 모든 기업설명회에참가했다. 통신, 유통, 은행, 대기업, 중소기업, 해운회사, 증권, 보험사…. 언뜻 떠오르는 것만도 십여회는 넘는다.

지원서를 따로 배부하는기업은 아예 수업을 포기하고 회사가 위치한 강남이나 여의도로 가서 지원서를 받아왔다. 채용박람회도 놓치지 않고 다녔다. 새벽부터 늘어선 긴 줄을보고 기가 질린 적도 있었다.

하루에 2~3 통의 이력서나 입사지원서를 보내고 서류전형 통과 연락을 기다리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2학기 내내 대략 50통 정도의 이력서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직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제비 뽑기에서 당첨되기를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기다림이 사람을 그렇게 지치게 하는 줄도 그때 처음 알았다. 집에아무도 없는 사이 합격자 통보 전화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에 회사에 확인전화를 건 것도 여러 번이다.

그때마다 ‘죄송합니다만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직업에 대한 전망, 회사 평판에 대한 고려따위는 안중에서 없어졌다. ‘어디라도 좋으니 면접이나한번 봤으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까지과 전체를 통틀어 3명이 취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들끼리나누는 대화는 서로에 대한 ‘취업안부’가 처음이자 끝이었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었다면 동병상련을 나눌 친구가 ‘너무’ 많았다는 사실일 것이다.대학원 진학으로 눈을 돌리는 친구들이 차츰 늘어났다.

3학년까지만 해도직업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념과 가치관이 있었다. 남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이나 외국인 회사를 고집하는 것도 아니었다.

회사의 인지도 보다는 그 안에서내가 어떻게 무엇을 해서 얼만큼의 성취를 느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IMF는 그런 당연한 기대치마저 사치스럽게 만들었다. 나는그저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하고 싶었고 그 외의 모든 기대들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렇게 해를 넘기고졸업을 한달 정도 앞둔 1998년 1월, 지금의 직장을 구했다. 입사지원 당시 내가 회사에 대해 알았던 것은 10명 남짓 되는 인원에 의류라는 아이템을 다루고 수출을 알선한다는 것 뿐. 그러나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 4년 경력이 되는 지금, 나는 내가하는 일에 대해 99% 만족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일이지만 ‘절망’ 직전에서 나를 구한 직장이 아닌가.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열심히,또 즐겁게 일했다. 성취감, 자신감, 안정감….내가 일을 통해 얻었던 그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다.

후배들을 보면 가슴이아프다. IMF세대만의 불운이라 생각했던 고통이 이렇게 빨리 되풀이될 줄은…. 그 절망과 무력감의 깊이가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함부로충고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얘기밖에는.

그리고 눈높이는 낮추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존중, 자신감,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우리 세대는 비록 운이 없지만 그러나 자학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젊음이다. 후배들이 일하는 자의 행복을 빨리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수영(金壽泳)대리 (여). 27세.이화여대 사회학과 93학번

FASHION RECOURCES사 머천다이저(merchandis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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