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땅에 들어오려면 탄저병과 천연두 예방접종을 하고 오시오.’생화학 테러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주요기업과 여행사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지사 직원과방문객 등에게 미국 입국 전 이들 전염병백신 접종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 파문이 일고 있다.
그러나 탄저병과 천연두 백신은 국내는 물론, 상당수 국가에서 현실적으로 구하기가 불가능해 ‘현실을 외면한 지나친 자국 보호’라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15일 체이스맨해튼 한국지점에 따르면 미국 본사는 최근 ‘미국 출장을 오는 직원이나 업무 관계자는 천연두, 탄저균 등 테러 가능성이 있는 전염병 예방접종을 하고 입국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 왔다. 체이스맨해튼은시티은행과 어깨를 나란이 하는 미국 굴지의 초대형 금융그룹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험사인 AIG도 미국 입국 전 예방접종을 요청하는 공문을 한국지사에 보낸 데 이어,미국ㆍ유럽 합작 증권사인 UBS워버그 한국지점에도 지난 14일 이 같은 내용의 공문이 도착했다.
여행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내 중견 여행사인 K사 관계자는 “미국쪽 파트너(여행사)가 미국여행객에대한 예방접종을 당부해 왔다”며 “우리뿐 아니라 몇몇 다른 여행사들도 이 같은 요구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방문을 앞둔 업체 관계자 등은 이들 백신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있다. 이번주 미국출장이 예정돼 있는 UBS워버그 한국지점의 박모씨는 “예방접종을 할 수 있는 곳을 알아 보았지만 헛수고였다”며 “이 상태로 미국 출장을 가야할 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의 하소연처럼 역학 전문가들은 미국기업의 공문내용은 실정을 모르는 무리한 요구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립보건원 이종구(李鍾求) 방역과장은 “탄저균의 예방백신의 경우 미군이 보유하고 있지만 미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승인을 받지 않아 민간에는 보급돼 있지 않다”며 “천연두 백신도 1977년 세계보건기구(WHO)의천연두 박멸 선언 이후 세계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대다수 국가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백신 접종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K여행사 남모(42)씨는 “테러 노이로제에 걸려 있는 미국기업들이 경황 중에 확인도 하지 않고이 같은 공문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생화학 테러가 확산될 가능성도 높아 미국이 또 어떤 요청을 해 올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생화학 테러 관련 요구에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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