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53)씨가 6개의 작품을 모은 중단편집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아침나라 발행)를 펴냈다.‘아우와의 만남’ 이후 7년 만의 작품집이다. 6편의 작품 중 ‘김씨의 개인전’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 ‘그 여름의 자화상’ 등 3편은 8, 9월 두 달 동안 한꺼번에 쓴 것이다.
작가는 여름 내내 ‘곡학아세 논쟁’과 ‘책 반환 소동’을 겪었고, 표제작 ‘술단지와…’에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그 여름의 자화상’에서는 친일 행위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친일문제에도 관대한 편”이라고 발언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내용이다.
그는 그러나 “정치에 관련된 논쟁은 소설의 소도구일 뿐 작품을 작품 자체로 평가해 달라”고 말했다.
신작 ‘그 여름의 자화상’은 친일의 범위와 정도를 규정하지 못하고 마구잡이식으로 친일파를 척결하려는 혼란스러운 해방정국을 그린 것.
작가는 “황장엽씨의 회고록에서 서사구조를 따왔다”면서 “요즘 들어 느닷없이 열기를 뿜는 친일파 논쟁에 대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올들어 전개됐던 미당의 친일에 관한 뜨거운 논쟁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한편으로 친일문제에 대한 그간의 발언과 관련해 “친일의 범위는 다수가 아닌 소수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치 문제와 별 관련이 없는 듯한 단편 ‘김씨의 개인전’도 작가가 말하는 주제를 듣고 나면 다른 시각으로 보여진다.
작가는 “작품의 주제는 삶과 예술의 관련성”이라면서 “예술은 삶과 유리된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작가의 체험을 직접적으로 소설화한 작품 ‘술단지…’를 발표하기에 앞서 자신의 작업을 ‘예고’한 것으로도 해석되는 말이다.
작가의 표현인 ‘유난히 길고 치열했던 여름’의 경험을 쓴 ‘술단지…’는 지난 달 문예지에 발표하자마자 화제에 올랐던 작품.
작가는 주인공인 소설가 ‘이 아무개’를 내세워 논쟁을 벌인 의원을 “선의왕의 총신이 된 여류는 키워도 너무 잘못 키운 개”라고 묘사하고, 논란이 됐던 ‘책반환 운동’을 “저 사람의 책을 반품하자며 때아닌 분서갱유 운동을 벌인 한심한 것들”이라고 지적한다.
도연명(陶淵明)은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세속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다.
‘귀거래사’의 한 구절에서 제목을 딴 작품집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引壺觴)’의 머리말에서 이문열씨는 이렇게 말한다.
“지천명(知天命)을 넘기고도 세상 시비에서 벗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소용돌이 속 깊이 빨려들고 있으니 아, 이 누구의 허물인가. 잠깐 멈춰서서 가만히 나를 돌아봐야 할 때가 된 듯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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