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한 분위기 속에 15일 한국을 찾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는 7시간 30분간 체류하며 정상회담 등 무려 7개의 일정을 쫓기듯 소화했다.그러나 국회방문 일정이 당일 아침 취소됐고,가는 곳마다 시민ㆍ사회 단체의 반대 시위에 부딪혔다.
○…고이즈미 총리는 오전 8시20분께 서울공항에 도착, 곧바로 동작동 국립묘지를 방문, 헌화ㆍ분향했다.
국빈방문이 아닌 실무방문이면서 국립묘지를 찾은 것은 이례적인 일로, 이는 일본측의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어 일본총리로는 처음으로 일제 탄압의 상징인 서대문 독립공원(옛 서대문 형무소)을 방문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오전 9시12분부터 35분간 머물며 전시관을 둘러보고 추모비에 헌화했다. 당초 일정보다 15분이 초과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추모비 앞에서 원고 없이 침착한 어투로 보도진을 향해 과거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으며, 질문은 받지 않았다.
그는 “(한국 국민이) 받은 고통은 저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하면서, 한 차례전쟁을 치렀던 미일 관계가 우호적으로 발전했듯이 한일관계도 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월드컵을 거론하며 한일 양국간 미래지향적 관계 정립을 역설했다. 그는 그러나 연설 중간에 ‘서로 반성해 가며…’ ‘총리라기보다 한사람의 정치인으로서…’ 등의 표현을 써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이에 앞서 고이즈미 총리는 공원내 역사전시관 방명록에 사무사(思無邪)(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라는 시경(詩經) 구절을 인용, 서명했다. 자신의 행동에 편견이나 거짓이 없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하지만 지하 1층 고문 전시실을 둘러볼 때는 기자들의 취재를 막아 항의를 받기도 했다. 지하 1층에는 일본 경찰이 한국 여성 독립투사를 성고문하는 장면 등 10여개의 고문 장면이 전시돼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어 성북동 일본대사관저로 이동, 1월 도쿄 지하철역에서 일본 승객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李秀賢ㆍ당시 27세)씨 부모를 접견, 위로했다.
면담 장소는 당초 소공동 롯데호텔로 잡혀 있었으나 시민들의 시위가 우려돼, 서둘러 변경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씨 부모에게 일제 액정 TV1대를 선물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오후 1시58분 정부중앙청사로 이한동(李漢東) 총리를 방문, 20여분간 환담한 뒤 오후 3시50분 서울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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