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15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일본의 과거사 사죄를 전제로 양국 역사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역사공동연구기구를 설치,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협의키로 했다.김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와의 1시간 55분에 걸친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서대문 독립공원을 방문,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것을 평가한다”면서 “앞으로 이것이 구체적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은 전쟁을 다시 일으키지 않는다는 반성 위에서 1998년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정신을 공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역사를 직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악화일로를 걷던 정부 차원의 한일 관계는 정상화의 계기를 마련했으나 양국간 신뢰가 확고하지 않고 고이즈미 총리의 사죄에 대한 불신이 제기돼 실질적인 정상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또 고이즈미 총리의 국회방문 취소와 시민단체들의 시위 등 방한에 대한 거센 반대도 양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상회담에 앞서 고이즈미 총리는 서대문 형무소 터인 독립공원을 방문, 역사전시관을 관람하고 추모비에 헌화한 뒤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데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마음으로부터 사죄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지금까지 외국으로부터의 침략, 조국 분단 등 참기 힘든 곤경과 수난 속에서 (한국 국민이) 받은 고통은 저의 상상을 초월한다”면서 “한일관계는 이런 과거 역사를 기초로 반성하면서 고통스러운 고난을 두 번 다시 겪지 않도록 서로 협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회담에서 김 대통령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대해 “침략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이 합사 돼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고이즈미 총리는 “전 세계의 누구라도 부담 없이 참배가 가능한 방향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외교당국자는 “고이즈미 총리의 언급은 외국의 국립묘지와 같은 전몰자 추모 시설을 별도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남쿠릴어장 꽁치조업 문제에 대해 김 대통령은 “일본과 러시아간 협의에서 우리의 전통적 어업 이익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으며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에게는 영토주권에 해당하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한국에게는 절실한 어업 문제이므로 서로 대화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도록 고위 외교 당국간 진지한 협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은 이밖에 2002년 월드컵 및 ‘한일 국민교류의 해’ 성공을 위해 적극 협력키로 하고 한국민의 일본 입국비자 면제, 일본의 대한투자 확대 문제 등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오후 3시 50분 서울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 고이즈미 사죄발언 요지 *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데 대해 진심으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가지며, 고통과 희생을 당한 분들의 무념(원통하고 분함)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외국의 침략, 조국 분단, 동포와의 싸움 등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런 상상을 넘는 고통을 견뎌 낸 것에 경의를 표한다. 이 같은 과거의 역사를 바탕으로, 앞으로 서로 반성하면서 두번 다시 고난의 역사를 밟지 않도록 협조해 나가야 한다.
20세기의불행한 역사가 있었지만 이 역사를 직시하면서 아시아의 발전과 세계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우호협력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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