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규제 완화논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정부ㆍ재벌간 갈등과 타협으로 전개됐던 기왕의 사례들과는 달리,지금의 규제완화 논쟁은 재계가 뒤로 빠진 채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즉 정부내 힘겨루기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부처간 견해차는 있을 수 있고, 최선의 정책도출을 위해 이견 자체는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특히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경부와 재벌규제의 직접수단을 독점한 공정위는 재벌정책에 관한 한 구조적으로 충돌소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 두 부처가 보여주는 이견조율 방식은 너무도 거칠다.
한쪽 장관(공정위원장)은 부처간 미합의 사항(초과출자분의결권제한, 기업집단지정 기준 3조원)을 전격 공개하는가 하면, 다른 장관(부총리)은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 이를 "여러 대안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실무적 접점을 찾지 못해 11일 장관 회의까지 열었지만 최종합의는 역시 무산됐다. 관가 풍토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더구나 현 경제팀의 출범구호였던 '팀워크'를 무색케 하는 갈등 광경이다.
하기야 5월말 1차 규제완화때만해도 출자규제 폐지를 주장하는 재계에 "논리와 적합성을 갖고 요구하라"고 면박을 줬던 정부가 넉달여만에 '과잉규제' 운운하며 쫓기듯 제도 자체를 송두리째 뜯어고치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정책의 번복과 지연, 투박한 의사결정과정의 피해자는 기업이다.
특히 4대 이외 그룹들은 계속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는지,신규출자는 할 수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 4ㆍ4분기가 시작됐는데도 내년 사업계획수립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식의 규제완화라면, 결코기업을 도와주는 규제완화는 될 수 없다.
이성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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