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2일 4차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불과 나흘 앞두고 일방적으로 연기함으로써, 향후 당국간회담 등 남북관계의 전면재조정이 불가피하게 됐다.북측은 특히 연기 이유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따른 남측 당국의 경계조치를 지적하며, 이를 해제하지 않을 경우더 이상의 인적 교류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향후전망
이번 사태는 북측이 남측의 정치적 문제를 이유로 정서적으로 민감한 이산가족에 관한 합의를 위반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는 남한 내에 북한 불신여론을 증폭시켜 그렇지 않아도 ‘퍼주기 논란’에 휩싸인 정부의 햇볕정책을 후퇴시킬 가능성이 있다.
사태의 추이에 따라 여야가 모처럼 공감대를 형성한 대북 쌀 지원 문제도 전면 재검토될 수 있다.
5차 장관급회담에서 합의한 각종 당국간회담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북측은 “당국간 회담 만큼은 제 날짜에 그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산가족 문제를 흔든 것처럼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는 불신이 커지고 있다.
북측이 2차 금강산 육로회담(19~21일), 2차 경협추진위(23~26일), 6차 장관급회담(28~31일) 등의 개최 장소로 금강산을 일방적으로 제시한 점도 남북회담의 관례를 깨뜨린 것이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경협추진위는 서울, 장관급 회담은 평양에서 열리고, 금강산 회담은 추후에 논의할 사안이다.
북측은 특히 남측 지역에 “대공포가 하늘을 겨누고, 아차하면 미사일이 발사될 수 있는 살벌한 경계태세가 취해져”불안한 만큼, ‘안정성이 담보돼있는’ 북측 지역에서 회담을 열자는 논리를 폈다.
■정부대응
정부는 항의와 유감을 표명하는 전통문을 통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특히 전통문에서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연기된다면, 장관급회담과 경협추진위 등이 개최되더라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혀, 당국간회담의 재고 의사까지 피력했다.
김형기(金炯基) 통일부 차관은 “식량지원 문제도 국민 의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조치하겠다”고 밝혀, 각종 경협사안을 이번 사태와 연계시킬 방침임을 시사했다. 김 차관은 또 북측이 금강산에서 각종 당국간회담을 열 것을 제의한데 대해서도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이 같은 대응은 합의사항이 이행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불가능하다는 판단과 함께 이번 사태로 악화한 국민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북측이 남측의 항의에 대해 ‘경계태세부터 풀라’고 맞설 공산이 커 긴장국면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北 왜 돌변했나
북한은 ‘남조선에 조성된 살벌한 정세’를 이유로 4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측이 5차 장관급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을 이러한 이유 만으로 위반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이 유보 입장을 밝힌 속사정은 준비부족일 것”이라며 “이번의 경우 이산가족 교환 일정이 빠듯했고 태권도 교류는 협의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북측이 남북교류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시간 부족은 극복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때문에 북측이 향후 예정된 각종 당국간회담에서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한 속셈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북측은 이산가족 방문 등 민간 행사는 연기하면서도 당국간회담 등은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정세현(丁世鉉) 국정원장 특보(전 통일부 차관)는 “북측이 이산가족 관련합의 사항을 위반한 것은 남측 당국을 압박, 향후 당국간회담에서 경제적 실리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대(宋榮大) 전 통일원 차관은 구체적으로 “북한이 경협추진위 등에서 미지급 금강산 관광대가금, 전력지원 등의 문제에서 남측 당국의 태도변화를 유도하고, 협상에서 기선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내 강경세력의 반발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신지호(申志鎬)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의 조치는 미국 공습을 목격하고 생긴 불안감에서 비롯된 일종의 피해의식”이라면서 “북한내 강경파들이 협상파들의 입지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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