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대기업의 출자를 원칙적으로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대신 순자산 25% 초과 출자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개선키로했다”며 재정경제부 등 관련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이 제도는 30대 대기업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순자산의 25% 이상 소유 또는 취득하지 못하도록 한 것.
이에 대해 재계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투자의욕을 저해해왔다”며 “초과 출자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마저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 재벌개혁을 포기한 것”이라며 “또다시 악성 순환출자로 부실경영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
■ 찬성-신종익(전경련 규제조사본부장)
기업은 수시로 분사, 신규사업 진출, M&A(인수합병), 외자유치, 증자, 전략적 제휴등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른 회사에 출자한다.
즉, 출자는 구조조정을 하고 기업가치를 높이고 위험을 분산시키는 핵심 수단이다. 이때 출자 규모는 대체로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
그런데, 정부는 경제력 집중 억제를 목적으로 1987년부터 출자총액을 규제했다. 출자규제는 우리산업이 경쟁력을 가졌을 때는 부작용이 적었으나, 대부분의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 새로운 사업으로 진출해야 하는 지금 기업에 여간 부담이 아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회사들이 출자규제로 설립되지 못하는 것은 국민경제에도 문제이다. 최근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출자규제를 완화하되, 한도를 넘는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규제를 대폭 완화하지 못할 고충은 있겠지만, 기본권 제한이라는 원칙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의결권제한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먼저,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업에 돈을 대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증자나 책임경영도 어려워 투자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역차별도 심화될 것이다. 외국인과 50 : 50으로 출자한 합작회사의 경영권이 외국인에 넘어갈 수도 있다.
주식이 분산되어 지금도 주주총회를 소집하기 어려운데, 특별결의를 받기가 어려워 의사결정이 지체될 것이다.
경영권 방어에도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기업이 투자기회를 놓치거나 기술개발과 마케팅 등 본연의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면 경쟁력이 떨어져 국민경제에 부담이 된다.
타회사 출자는 정부에서도 인정하듯이 공시와 지배구조로 해결할 사항이다. 그래서 출자한도를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아직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미흡하여 당분간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면, 지배구조에 문제되는 출자만 규제하고 나머지는 의결권을 허용하여야 할 것이다.
주주나 채권금융회사들이 동의한 출자, 정부에서 선정한 대형국책사업이나 차세대 성장산업에 대한 출자, 민영화하는 공기업에 대한 출자 등이 이러한 대상이 될 것이다.
증자와 같이 기업본연의 활동에 수반되는 출자나 단순투자 목적의 출자도 적용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이고, 주주총회의 원활한 소집이나 의결을 위한 배려도 필요할 것이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조속히 출자규제를 완화하여 기업이 하루라도 먼저 신규사업에 진출하도록하는 것이다.
물론, 규제완화 후 별 부작용이 없으면 선진국처럼 출자규제를 완전히 폐지하여야 한다.
■ 반대-홍종학(경원대 경제학부 교수)
출자총액제한제도 때문에투자를 못한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한 기업이 내부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않는다. 오직 재벌기업의 계열사에 대한 과다한 출자만을 규제할 뿐이다.
재벌은 계열사에 대한출자를 통해 문어발식 경영을 했으며, 이러한 경영방식의 대부분은 부실경영으로 귀결되었다.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다시 추가적인 출자를 통해 부실을 감추다가, 결국 전 계열사가 동시에 무너지게 되고 그 부담은 모두 일반 국민이 떠 안는 악순환을 우리는 수도 없이 겪었다. 그 결과 IMF사태를 맞게 되어 큰 고통을 겪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처럼 크나큰 부작용에 비해 최근 20년간 재벌이 주력기업 외에 다른 회사에 출자했다가 성공한사례는 없다.
계열사간의 출자를 이용해 재벌 총수는 5%의 소유지분으로 전 계열사를 지배하는 왜곡된 구조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겨왔다.
실제로 경제가 어렵던 지난 3년간에도10대 재벌의 총수 일가가 보유하는 주식 수는 2배로 늘어났으며, 어느 재벌 총수의 2세는 아무런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서 천문학적인 재산을 축적했다.
심지어 총수 일가가 이득을 취하기 위해 많은 계열사를 동원한 주가조작을 했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되었던 98~99년 기간동안 이러한 부작용은 극에 달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원래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해 가공자본을 형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그런데 98년도에 엉뚱하게도 적대적 인수합병시 외국인에 비해 역차별이 된다는 이유로 폐지하였다. 그러나 재벌 계열사를 적대적으로 인수합병 하겠다는 시도는 전혀 없었다.
부작용만 심해지자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다시 부활되었고, 내년 3월이 되어야 경과기간이 만료된다. 입법취지는 전혀 도외시한 채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로 갑자기 정치권과 정부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합당한 자료를 제시하는 공식문서가 전혀 없기 때문에 경제적 논리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마치경기회복을 위해 소비를 살려야 하고, 도둑도 소득이 있어야 소비를 할 것이니 도둑을 잡지 말라는 것과 같은 논리로만 보인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되면 악성 순환출자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기형적 지배구조로 인해 또 다시 위기가 올 것이며, 한국경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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