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외교를 보면 한반도 주변 국가 모두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는 느낌이며, 이러한 상황은 정권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국가적으로 우려할 상황이다.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던 미국과 일본과는 어려워진 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으며, 새롭게 외교적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러시아와 중국과는 우리 뜻대로 협조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남쿠릴 해역의 꽁치조업을 내년부터는 제3국에 허용하지 않겠다고 일본과 합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 초 러시아와 꽁치조업에 관한 협정을 맺음으로써 일본을 소외시키는 외교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찬하던 우리 외교 당국은 할 말을 잃고 있다.
중국의 경우도 역사인식과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관해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시원한 해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중국 방문을 받아들여서,우리로서도 일본 총리의 한국 방문을계속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 자체에 관해서는 반대만 할 것이 아니며, 이번 방한이 계기가 되어 경색된 양국 관계가 복원되었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다.
현재의 한일관계는 98년 10월 정상회담 이후 구축되었던 우호 분위기와 비교하면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양국 관계의 불협화음이 이대로 지속되어서는 우리 국익에도 결코좋은 일은 아니며, 관계 복원이 이루어져서 다면적이며 심화되고 있는 양국의 민간차원의 교류가 더 한층 탄력을 받아서 진정한 우호관계로 진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본 총리의 방한을 우리가 국익에 기반하여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서 결정하지 못하고 주변 상황의 변화에 끌려서 결정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문제이다.
미국의 요청이나 중일 관계의 진전이라는 주변 상황의 변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결정할 일이었다면, 우리 외교 당국의 둔한 타이밍 감각과 주변 정세의 변화에 관한 정보 수집력의 미약함은 주변국가의 신의 없음을 규탄함으로써 덮어버릴 수는 없다.
우리 외교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 요인은 여러 가지 지적될 수 있으나, 우리 외교 기조의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 외교는 지금까지 한미 동맹과 한일 우호관계가 양대 축인동맹 외교가 기조였다.
이러한 동맹외교에 현 정부가 출범하여 세력균형 요소가 많이 가미되고 있다.
물론 한미동맹이 우리 외교의 변함없는 기조라고 정부 당국은 발표하고 있으나, 강대국을 이용하여 다른 강대국을 견제하고 고립시키고자 하는 세력균형적 외교 형태가 자주 보이고 있다.
세력균형 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기량이 주변국가의 그것보다 뛰어나야 하며, 냉철한 계산 감각과 국내의 국민적 지지가 필요하다.
세력균형 외교가 성공하면 주변 국가 모두와 균형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자주 외교를 시행할 수 있으나,성공하지 못하면 기존 동맹 국가는 배신감을느끼는 반면에, 새로운 외교 돌파구는 열리지 않아서 주변 국가 모두에게 왕따를당하는 것이다. 우리 외교는 현재 후자의 길을 가고 있는 듯하다.
외교에는 상대가 있고 그 상대국가가 우리의 의사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자원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외교목표라고 하더라도 실현되지 않는다.
약소국 외교는 주어진 현실적 조건을 잘 고려하여 강대국에 의해서 결정되는 국제 질서를 존중하는 전제 하에서 국익을 추구하는 외교가 되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왜 우리 외교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자성의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김호섭 중앙대 교수ㆍ 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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