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양전자와 음전자의 구름 사이의 방전현상으로, 몹시 빠르게 번쩍이는 빛(동아 새국어사전)■ 새 정의: 갑작스런 만남
■ 용례: “오늘 밤 9시 번개 어때?”
비가 억수로 쏟아지거나 먹구름이 낀 허허 벌판에만 번개가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더 이상 그런 자연과학적 정의가 통하지 않는다.그들은 수시로 ‘번개’를 때린다. 놀라운 능력이다.
“오늘 오후 9시 강남역 번개.” 천둥과 함께 번개가 그곳에 내리친다는 말이 아니다. 갑작스레 만나자는 제안이다.
번개는 누구나 알고 있듯, 자연과학 용어다. 먹구름 속에서 음전자와 양전자가 만나 방전하는 현상을 뜻한다.
1,000분의 1초만에 지상에 내려 꽂히는 놀라운 속도감. 결국 갑작스런 만남을 뜻하는 ‘번개’도 이런 속도의 위력을 차용했다. 언제 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번개처럼 만남을 제안하는 ‘번개’도 예측할 수 없다.
그 방법은 주로 전화나 e-메일. D인터넷통신 동호회 시솝인 박호경(30)씨는 “번개에는 일대일 만남도 있고 다수의 모임도 있다”며 “의외의 상황을 즐기는 신세대들은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그런 만남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군대에서도 번개를 하나의 용어로 빌어 쓰고 있다.
한밤중 상황 점검을 위해 유선통신으로 들려오는 ‘번개통신’ 소리는 모든 군인을 긴장시킨다.그러나 군대 바깥의 세상에서는 ‘번개’ 소리가 더 이상 무섭지 않다.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이른바 ‘번??’이라는 용어가 있다. 갑자기 만난다는 ‘번개’와 섹스가 결합한 일본어식 조어다.
10일 오후 11시 S인터넷통신 채팅방 제목 중 상당수에는 ‘번??’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계에 나가는 어머니들과 동창회, 향우회 등의 각종 모임이 있는 아버지들. 그들은 ‘번개’를 이해하지 못한다.‘번??’과 같은 동물적인 만남에 혀를 찬다.
‘번??’을 방제목으로 내건 대학생 신모(21)씨는 “서로를 모르는 상황에서 스릴 있게 만나는 일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던 것뿐”이라며 “원조교제니 룸살롱이니 하는 기성세대의 잘못된 문화를생각한다면 이런 일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때 번개는 신의 노여움이 지상으로 표출되는 것이라는 신화가 존재했다. 죄를 지으면 벼락을 맞는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천상의 번개가 이 허접스러운 땅에 벌을 내릴 때가 된 것일까? 그 번개가 누구에게 떨어질지 궁금하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