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집권 후반기를 맞아 경제부처의 불협화음이 심화하면서 재벌규제 완화등 중요정책이 표류하고 있다.기업들의 투자분위기 조성을 위한 출자총액제한 및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제도 개선등을 둘러싼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간의 갈등은 부처간 정책조정능력이 의심받고, 정책의 신뢰성도 떨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진념(陳 稔)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이남기(李南基) 공정위원장 등 경제부처 장관들은 11일 핵심쟁점에 대해 최종담판을 시도했지만 대규모기업집단의 자산규모 등 핵심쟁점을 둘러싼 이견조율에 실패, 부처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재벌규제 완화문제는 김대중 정부가 대표적인 치적으로 꼽는 재벌개혁의 정체성 논란과도 관련돼 있어 향후 상당한 후유증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벌 규제완화 문제와 관련한 재경부와 공정위간 핵심쟁점은 출자총액제한과 대규모기업집단지정제도로 압축되고 있다. 공정위는 이날 회의에서 그룹계열사의 타 계열사에 대한 출자한도를 순자산의 25%로 규제하고 있는 출자한도를 현행대로 25% 이내로 유지하되, 대규모기업집단 지정기준을 3조원 이상으로 조정하자는 카드를 고수했다.
공정위는 출자한도를 풀어주는 만큼, 대규모기업집단은현재의 틀을 유지해 재벌들의 무분별한 문어발확장을 차단하겠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자산규모를 3조원으로 할 경우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금지등의 규제를 받는 기업집단은 26대그룹(신세계)까지가 해당되지만, 이는 현행 30대그룹지정제와 별다른 차이가 없게 된다.
재경부는 이에 대해 순자산의 출자한도를 25%에서 40% 가량으로 높이는 재경부안을 유보하는 대신, 대규모기업집단의 자산기준을 국내총생산(GDP)대비 1~2%(5조~10조원)로 대폭 확대하자고 맞섰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출자한도를 현행대로 유지한 채 자산규모를 3조원으로 할 경우 순자산이 적고, 계열사도 많지 않은 중하위권 그룹들의 경우 투자를 조금만 늘려도 곧바로 출자한도에 걸리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반박했다.
두 부처는 다만 재무구조가 우수한 재벌에 대해선 대규모기업집단에서 제외하고,공기업 인수 등의 경우 의결권 제한 족쇄를 풀어주는 등 일부 합의점을 찾았다. 그러나 재계에선 이 같은 방안들은 ‘언발에 오줌누기식 미봉책’이라고 전면적인 규제완화를 촉구하며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부처간 이 같은 이견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공정위는 순자산을 상향조정하거나, 자산규모를 대폭 올릴 경우 ‘재벌개혁의 대장전(5+3원칙)’이 훼손된다며 재경부의 발상에 대해 ‘경기부양을 위해 재벌개혁의 원칙을 포기하는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반면 재경부는 공정위가 개방화시대, 우물안 개구리처럼 규제정책에 집착해 기업들의 활력을 가로막고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규제완화문제에 대해선 정치권도 중구난방이어서 관련법 개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민주당의 경우 현행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규제를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당정간 조율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의춘기자
eclee@hk.co.kr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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