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한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시위대와의 전쟁에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시위 양상이 폭력 일변도로 치닫기 시작한데다 일부 강경파 이슬람 지도자들이 정권퇴진 운동을 시도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무샤라프 대통령은 11일 이틀째 치안관계자 고위 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어떤대가를 치르더라도 국가 안보를 수호할 것”이라면서 시위 진압에 필요하다면 군병력을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12일 예상되는 전국적인 반정부집회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 날은 금요일로 파키스탄 전역의 이슬람 사원에서 종교 집회가 열리게 돼 있고 이어 신자들과 학생들의 가두진출이 예상된다.파키스탄 정부는 이 날이 향후 시위양상을 판가름할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반미, 반정부 시위가 아직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다. 과격 시위는 주로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발루치스탄주(퀘타)나 북서변방주(페샤와르)에서 발생하고 있고, 시위 가담자들도 아프간 난민이거나 푸슈툰족출신의 마드라사(이슬람 학교) 학생에 국한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중의 반응도 “지나치다”는 쪽이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서, 우체국, 은행 등은 물론 아프간 난민구호단체 건물에까지 방화를 서슴지 않았다. 페샤와르남서쪽 120㎞지점인 ‘한구’에서는 9일 흥분한 시위대 일부가 코란을 불태우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유력 영자지 ‘새벽’(Dawn)은 11일자 사설에서 아프간 난민을 지원해온 유엔아동구호기금(UNICEF),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과 비정부기구(NGO)건물이 시위 도중 불타버린 사실을 개탄하고 시위대를 비난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그 동안 유엔기구 등이 여성의 인권이나 가족계획을 강조하면서 서구의 ‘타락한 사상’을 전파한다며 적대시해왔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시위의 과격화가 충분히 예견됐음에도 불구하고 지휘체계 혼선이나 부처 협조 부족으로 초동 단계에서 진압에 허점을 드러냈다고 치안관계자들을 질책하기도 했다. 이는 그가 권력기반인 군부를 비롯한 국가체제를 확고히장악하고 있음을 반증한 것이다.
하지만 무샤라프가 시위와의 전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는 아프간 전쟁 양상에 더좌우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프간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할 경우 이제껏 침묵해온 대다수의 파키스탄 국민이 지체 없이 시위대열에 합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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