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속으로] 콜럼버스의 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속으로] 콜럼버스의 날

입력
2001.10.12 00:00
0 0

1492년 10월12일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탈리아식 이름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 스페인식 이름은 크리스토발 콜론)가 이끄는 스페인 항해단이 대서양을 건너 현재 바하마 제도의 와틀링섬에 도착했다.유럽인들이 ‘신대륙 발견’이라고 부르는 사건이었다. 콜럼버스는 아시아로 가는 서방 항로를 개척하고자 했던 카스틸랴 여왕 이사벨 1세에게 등용돼 그 해 8월3일 스페인을 출발했다. 그가 이사벨1세와 맺은 계약에 따르면, 콜럼버스는 새로 발견한 토지의 부왕(副王)으로 임명되고 그 땅에서 나오는 모든 귀금속의 10분의 1을 갖게 돼 있었다.

그는 와틀링섬을 인도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고, 신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 섬을 산살바도르(거룩한 구세주)라고 불렀다. 미국에서는 콜럼버스가 와틀링섬에 도착한 10월12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1492년의 항해에는 산타마리아, 핀타, 니냐 등 세 척의 배가 참가했다. 콜럼버스는 와틀링섬을 발견한 데 이어, 쿠바와 히스파니올라(아이티)에 도달해 선원 가운데 일부를 그 곳에 남겨놓고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그가 미지의 땅에서 가져간 금제품은 유럽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지만, 그의 대서양 항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콜럼버스는 그들에게 달걀을 세울수 있느냐고 물은 뒤 고개를 젓는 사람들 앞에서 달걀 아래를 깨 세워 보임으로써,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일화를 만들어냈다.

콜럼버스는 그 뒤에도 세 차례 더 대서양을 항해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그가 인도인이라고 믿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대ㆍ살육ㆍ노예화하고, 도시를 건설하고, 금광을 경영하고, 파나마 지협을 발견했다. 피비린내가 잦아들 날 없었던 ‘신대륙 개척’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