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명수 칼럼] 국회는 유세장이 아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명수 칼럼] 국회는 유세장이 아니다

입력
2001.10.12 00:00
0 0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 당 총재가 오랜만에 만나 ‘초당적 협력’을 다짐한지 하루 만에 여야관계가 다시 악화하고 있다.한나라당 안택수 의원은 10일 국회에서 대통령의 6.25관련 발언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대통령직 사퇴를 요구했다. 너무 빨리 온 파국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나는 지난 주(10월5일자) 칼럼에서 김 대통령의 6.25관련 발언이 대통령의 발언으로서 적절치못하다는 뜻을 밝힌바 있다.

북한이 6.25전쟁을 일으킨 것은 통일이 목적이었고,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실패한 통일시도’ 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남한입장에서 볼 때그 전쟁은 적화통일의 야욕으로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다.

그 만행을 대통령이, 그것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실패한 통일시도’ 라고 표현한 것은 국민 정서에 비춰 거부감이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야당의 공격은 더욱 적절치 못하다. 야당은 사태를 너무 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그 동안 ‘국기를 뒤흔드는 망언’이라고 대통령을 공격해 왔고, 10일 안택수 의원은 대통령의 발언이 ‘반국가적이고 해괴 망칙한 작태’라고 비난했다.

그는 “대통령 자신이 친북적 이념을 가졌거나 비서진이 써 준 원고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어떤 경우든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정도의 정치공세는 그 동안 흔히 있었지만, 어렵게 성사됐던 여야 영수회담 하루 만에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하야를 요구했다는 것은 상식과 도의에 어긋난다. 그것은 여야 사이의 신뢰뿐 아니라 국민에 대한 신뢰를 깨는 행위다.

회담이 끝난 후 손을 맞잡던 여야 영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에 국회에서 서로 치고 받는다면 국민이 정치를 어떻게 보겠는가. 또 여야 영수를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겠는가.

국회는 선거유세장이 아니다. 아무리 국회의원의 생명이 선거에 달렸다 해도 지역구를 바라보며 발언해서는안 된다.

선거를 의식한 정치공세가 국회에서 춤을 추고 있다. 강경 발언, 확인되지 않은 폭로, 나만 죽을 수 없다는 물귀신 작전으로 여야가 만나기만하면 멱살잡이를 하고 있다. 지역 구민들이 박수 쳐 줄 것이라고 판단되면 국민의 따가운 눈총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태도다.

의원이 의사당에서 한 발언은 법적으로 면책특권을 갖지만 국민 앞에선 면책이 없다. 의원은 한마디한마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안 의원은 “나의 발언은 영수회담 이전에 준비된 것이며 소신에 따른 것이므로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 되었다.

대통령이 국군의 날 연설 파문으로 하야해야 한다는 것이 과연 그의 소신일까. 영수회담 이전에 준비된 원고를 손질하지 않은 것도 소신일까.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면 안의원 발언에 대해 민주당측에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그런 일로 물러나야 한다면 1년에 한번씩 대선을 치러도 못 당하겠네” 정도로 가볍게 넘어가는 게 좋을 것이다. 여야가 모두 이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더 심한 공격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나 야나 그런 형편이 못 된다. 자기 당 지도자를 누가 비난하면 벌떼같이 일어나 충성경쟁까지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의원과 의원, 의원과 각료들이 촌철살인의 독설과 유머를주고 받으며 폭소를 불러 일으키는 다른 나라 국회 이야기가 우리에겐 요원하기만 하다.

안 의원 발언으로 냉각된 여야 관계는 11일 민주당이 사전 입수한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의 대정부질의서 내용으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김의원의 질의서에 포함된 “김대중 정권 출범의 의미는 단순한 체제내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반북 정권에서 친북 정권으로 넘어간 것”이라는 구절에 여당이 반발하고 있다.

그 동안 김의원은 이런 성향의 주장을 계속 펴 왔으나, 같은 체제 내에서의 정권교체가 아니라는 이번 주장은 지나치게 들린다. 그의 과격함 역시 다분히 선거를 의식한 게 아닐까.

한나라당은 북한에 쌀 보내기를 제안하는 등 남북관계에 어느 정도 진전된 자세를 보였는데, 이번에 쏟아지는 의원들의 발언은 거리가 있다. 국회 파행이 한나라당 만의 책임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 테러의 충격과 경기침체 속에서 영수회담이 정치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한 가닥 기대를 걸었던 국민에게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진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발행인

msch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