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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직관을 지렛대로 상상을 엔진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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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직관을 지렛대로 상상을 엔진삼아"

입력
2001.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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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성의 비밀' / 아서 밀러 지음 / 사이언스북스 발행“과학자는 화가와 마찬가지로 이미지를 창조함으로써 자기주위의 세계와 자기 내부의 세계를 해석한다.”

예술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은 과학과 예술에서 이미지와 창조성의 관계를 이렇게 파악했다.

과학은 자연을 시각 이미지로 표현함으로써 이해한다. 과학자는 화가와 마찬가지로 보이는 세계든 보이지 않는 세계든 그것을 시각적으로 해석하려고노력한다. 특히 지각 너머의 세계를 탐구할 때, 이러한 시각화의 열망은 절망적인 벽에 부닥치기도 한다.

현대의 원자물리학 또는 양자역학이 좋은 보기다. 여기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둥근 구슬이나 러더포드의 근대 물리학이 그려냈던 태양계를 닮은 원자 모형은 설 자리가 없다.

원자는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일 수 있다는,현대물리학이 파악하는 원자의 이중성은 시각화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만질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표상, 그 황홀한 이미지를 추적하는 물리학자들은고군분투를 거듭하며 진보하고 있다.

저명한 과학철학자 아서 밀러(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교수ㆍ과학기술연구소장)의‘천재성의 비밀’(원제 ‘Insights of Genius’)은 과학자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시각 이미지의 근원과 의미를 파헤치는 거대한 지적 모험이다.

창조적 지식은 어디서 오는지, 거기에 이르는 천재들의 사고방식은 무엇이 특별한지 밝히기 위해 저자는 길고 험한 여정에 오른다.

그는 물리학에서 출발해 그 밑바탕이 되는 수학과 철학, 정신 작용의 본질을 규명하는 심리학, 생각의 수단인 언어와 시각까지 두루 검토하는 방대하고 끈질긴 탐색을 강행한다.

책의 절반 이상은 물리학자들의 모험을 다루고 있다. 창조적 지식의 근원을 밝히려는이 야심찬 시도와 동행하려면 약간의 인내심과 꼼꼼한 독서가 필요하지만, 이 책이 제공하는 신선한 지적 자극은 그런 노고에 대한 훌륭한 보상이다.

여기서 천재성은 창조적 사고를 가리킨다. 그것이 모차르트의 음악, 피카소의 그림,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공통점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놀라운 작품 또는 이론에 도달했을까. 저자는 천재성의 비밀을 직관과 상상력에서 찾는다.

“내용보다 형태를 강조하고 비본질적인 것을 잘 솎아내고적절한 문제를 선택하는 것은 뛰어난 과학적 창조성의 특징이다. 이러한 능력을 기초로 과학자, 음악가, 화가, 또는 작가들은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완전히 습득한다. … 이 모든 것의 핵심은 직관에 있다. 예술과 과학의 궁극적 도구는 인간의 정신이고 자연을 읽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상상력이다.”

과학자들은 직관을 지렛대로, 상상력을 엔진 삼아 상식을 뛰어넘는 깨달음을 얻곤한다. 물리학의 많은 공리들은 실험실 데이터가 아닌 머리 속 사고 실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있지도 않은, 정확히 말해서 일상 생활에서 체험할수 없는 시공간을 추론을 통해 더듬어나감으로써 세계를 해석하는 표상으로 그려내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추상화에 이른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추상화 경향과닮았다.

책은 마지막 제10장에서 현대물리학과 현대미술의 관계를 다룬다. 저자는 피카소나 브라크 등 큐비즘(입체파) 화가들의 그림에서 4차원 시공간을 다루는 현대물리학 이론과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저자는 양자역학이 등장하여 물리학이추상적으로 되어간 것과 현대미술이 구상을 포기하고 비구상으로 간 것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낭만주의 시인 블레이크는 “예술은 생명의 나무이고 과학은 죽음의 나무”라고 했지만, 저자는 과학과 예술이 직관과 상상력으로창조에 이른다는 공통점을 지닌 동지임을 밝히고 있다.

깊은 통찰로 쓰여진 이 책을 단숨에 읽고 이해하기는 벅차다. 그러나 지적 호기심에넘치는 독자라면,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읽는 노력을 아끼지 말 일이다. 김희봉 옮김.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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