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비’에 대한 반응은 엇갈릴지도 모르지만,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영화배우’ 김호정(33)의 발견. 이미 10년 경력의 알아주는 ‘연극배우’지만 영화의 필모그라피는 간단하다. ‘침향’(감독 김수용ㆍ2000년) ‘플란다스의 개’(감독 봉준호ㆍ2000년)와 ‘나비’ 단 세 편.
‘나비’(감독 문승욱)에서 그는 어둡다.
배에 낙태수술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독일동포 김안나. 늘 우울했다. 촬영장에서 김호정은 어디론가 가고, 과거를 잊고 싶은 김안나가 있을 뿐이었다.
“계속 쫓아다니는 두 대의 디지털카메라 때문에 맘놓고 스태프에게 ‘밥 먹었냐’는 안부인사조차 건넬 수가 없었다. “
망각의 바이러스를 찾아온 도시의 공항에서 불안한 듯한 모습. 실제로도 카메라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를 몰라 불안했다”고 한다.
안나의 심리에 동화하기가 쉽지 않았다.“감독은 배우들의 감정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계산된 연기도 금방 알아차렸다.”
거의 무표정하고, 뚜렷한 감정의 폭발도 없다. 김호정은 얼굴을 잔뜩 구기지 않고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여인을 표현했다.
7개월 된 태아를 지웠고 그것이 상처가 돼버린 독일동포. 관객이 안나에 대해 얻는 정보는 이 정도다. 김호정이 생각하는 안나도 기대만큼 구체적이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가졌으나 사랑이 깨지면서 아이를 책임질 수 없어 낙태했다.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과거를 망각하고 싶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막막하다.”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어낼 줄 아는 것이 배우”라는 김호정. 올해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최우수여자배우상에 해당하는 청동표범상을 거머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연극배우로 올해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여자연기상(2001년) 등 여러 차례 수상경력이 있으나, 그는 청동표범상이 갖는 의미를 잘 안다. 작은 영화 ‘나비’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김호정은 ‘구체적 설명없이 던져지는 상황과 이미지 때문에 어렵다’는 ‘나비’에 대한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인간, 상처 받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 공감할 것”이라고 말한다.‘가벼움’보다는 ‘무거움’이 느껴지는 배우.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돌아오자마자 들어갔던 연극 ‘첼로와 케찹’을 끝냈다. 한동안 쉬려고 한다.
1년 출연작이 1~2편에 불과하니 시나리오나 희곡을 선택하는 안목도 각별히 까다로울것 같은데 “충동적”이라고 답한다. “항상 다른 인물로 보여주고 싶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영화 나비
불친절하다. ‘나비’(감독 문승욱)는 상황을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는다. 망각의 바이러스를 찾아온 관광객 안나(김호정)가 무엇을 잊고 싶은 것인지조차도 알 수 없다.
잊고싶은 기억을 지워주는 망각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는 미래 한국의 도시. 낙태의 상처를 지닌 독일동포 안나가 과거를 지우려 한다.
그를 맞이한 바이러스가이드 유키(강혜정)는 임신 7개월째인 납중독환자. 이들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는 택시운전사 K(장현성)은 어릴 때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다.
과거를 없애려는 여자와 과거를 찾고자하는 남자, 임신 7개월 때 낙태를 한 여자와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새 생명을 지키려는 여자. 서로 상반된 상처와 희망을 지닌 이들은 부대끼면서 상처를 치유한다.
물의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한다.어두침침한 도시에 추적추적 내리는 산성비, 안나가 처음 웃음을 띠어보이는 수영장, 유키가 아이를 낳는 바다 등. ‘물’은 이중적이다.
산성비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상징하지만, 생명의 시작인 양수로서의 이미지도 있다. 16㎜ 디지털카메라의 질감이 잘 살아난 유키의 출산 장면.
바닷물 속에들어간 세 사람은 힘을 합쳐 아이를 받아낸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아이를 통해 미래의 희망을 얻는다. 희망을 모성의 원천인 자궁에서 찾는 상투적 설정이다.
문승욱 감독은 “서울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비’에서 그곳은 몽환적이면서 음습하다.
두 여주인공 역을 맡은 김호정과 강혜정은 로카르노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각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상이 전체적으로 너무 어둡고, 지나친 근접촬영과 흔들림으로 불편하다. 13일 개봉.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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