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 멀티미디어의 놀라운 발전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단언했다.이제 글자와 텍스트의 시대는 끝났다고. 앞으로는 그림과 동영상이 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그러나 그 예견은 빗나갔다.
글자와 텍스트는 뮤직비디오와 영화, 컴퓨터 그래픽과 웹 디자인 등 영상매체와 단단히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시각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그것이바로 ‘타이포그라피(Typography)’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16일~12월 4일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제1회 ‘타이포 잔치:서울 타이포그라피 비엔날레’는 그림(graphy)처럼 변신한 글자(typo)로서 타이포그라피의 현주소를 알리는 행사다.
안상수(조직위원장ㆍ㈜안그라픽스 대표이사), 성완경(미술평론가),가쓰미 아사바(일본), 콜린 뱅스(영국) 등 조직위원 9명이 선정한 세계적 작가 90명이 4~10점씩을 내놓았다. 24개 국 작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 최초의 행사다.
먼저 고전적인 타이포그라피의 세계.
일본 작가 타다노리 요쿠가 디자인한 청소년잡지 ‘브루터스’의 표지는 화려한 타이포그라피의 세계 그 자체다.
1999년 8월호 잡지 표지에 실린 두 야구 선수의 배트와 유니폼을 온통 글자로 물들였다. 투박하게 디자인한 일어 히라카나와 선수들의 엉성한 타격폼이 재미있다.
영화 ‘내마음 속의 풍금’의 이미지 작업을 맡았던 한국 작가 김수정씨의 2001년 작품도 글자를 ‘조형예술’로 끌어올렸다.
‘타이포그라피에서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기법적 발달은 자발성과 무작위성 그리고 인터랙션기능에 의한 것이다’라는 긴 문장의 글꼴과 공간 배치가 눈길을 끈다.
독일작가 바바라 바우만과 게르트바우만의 공동작품 ‘Brand Elements’는 웹 디자인이라는 최근의 멀티미디어 공간을 파고든 작품.
이밖에 시집(후미오 다치바나), 전시 카탈로그(데미안 허스트),상점 광고 포스터(조나단 반브룩), 기업 홍보용 애니메이션(피터 조)과 만난 작품도 선보인다. 그러나 건물이나 길바닥에 새겨진 작품, 영화나 뮤직비디오에 실린 작품을 볼 수 없는 점이 아쉽다.
비엔날레는 타이포그라피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 5명의 특별전도 마련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타이틀 그래픽을 디자인한 미국 작가 솔 바스(1920~1996),1964년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 ‘대머리 여가수’ 대본을 디자인한 로베르마쌩(76) 등. 한국 작가로는 한글꼴 디자인 연구에 진력한 김진평(1949~1998) 전 서울여대 교수가 포함됐다.
안상수 조직위원장은 “영어5,000년, 한자 3,000년에 비해 태어난 지 불과 555년밖에 안 되는 한글의 나라 한국에서 글자가 갖는 무한한 상상력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02)580-1537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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