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일본 NHK 방송이 세계의 유명한 종 소리를 소개하는 특집을 방영했다.소리가 곱고 장중하기로 유명한 종들을 실제로 쳐 시청자들에게 들려준 프로였는데, 우리나라의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소리가 단연 으뜸이라는 평을 받았다.
크면서도 장중하고, 맑고 고운 음색이 고르게 길게 울려 퍼지는 신비한 소리에 일본 음향학자들이 크게 놀랐다 한다. 소리가 크면 맑지 못하고, 맑으면 길지 못한 법인데, 에밀레종은 다 갖춘 것이다.
■ 전문가들은 이 신비한 소리의 비밀을 맥(脈)놀이 현상으로 설명한다.
종을 치면 종의 지름, 원주, 길이 방향으로 3가지 진동이 일어나는데, 지름 방향 진동이 가장 크다.
3개 구간 음으로 구성되는 종 소리의 첫 구간 음은 '탕' 하는 큰 소리로 그친다. 제2구간 음은 10초 정도이어지는 고음이고, 그 후 길게 울리는 제3구간 음이 여운이다.
진동수가 다른 두 파동이 합쳐져 반복적으로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길게 울리는 여운이 맥놀이 현상이다.
■한국 종의 특징인 명동(鳴洞)도 비밀의 한 요소로 설명된다. 일본종이나 중국 종과 달리 한국 종은 종구(鐘口) 밑에 파 놓은 확(명동)이 종소리의 진동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해 긴 여운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종의 키와 종구의 지름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는 종구와 지면과의 거리의 두배보다 약간 깊게 명동을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실험 결과가 있다.
에밀레종은 지면에서45㎝ 떨어져 있는데, 명동의 깊이는 94㎝다.
■에밀레종 윗부분에 달려있는 음관(音管)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종 고리 부분에 붙어있는 길이 96㎝ 직경 14㎝ 크기 대통 모양의 관은 다른나라 종에는 없다.
종소리의 잡음을 흡수해 맑고 고운 음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지만, 여운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물리학도 음향학도 없던 시대에 세계 제일의 종을 만든 선인들의 지혜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9년만에 다시 울린 에밀레종 소리가 1,300년 후세 사람들에게 그 비밀을 숙제로 던져주었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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