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이 이어지면서 국내외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금융시장은 일단 차분히 반응하고 있지만 전쟁 추이에 따라 급격한 경기 침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쟁의 성격과 전망에 대한 전문가 좌담(9일자 12면)에 이어 전쟁이 미칠 경제적 파급 효과를 진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먼저 이경태 원장님께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이경태= 9.11 미 테러사태 이후 미국 경제가 올 3ㆍ4분기와 4ㆍ4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예상이었습니다.
문제는 회복 시기와 정도입니다. 테러 이후 미국은 물론 EU국가들도 금리 인하와 재정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국제적 공조노력이 확실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경제회복이 내년 상반기중 ‘V’자로 가파르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저는 여기에 한가지 단서를 달고 싶은데요. 설령 내년도 본격 회복이 이뤄진다 해도 1995~99년 같은 호황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보기술(IT) 산업의 회복이 수요 부진과 신기술 부족으로 더딜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쟁 시나리오별로 여러 가지 전망이 나올 수 있을텐데요.
▦이경태= 미국이 단기에 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면 테러 충격은 일순간에 해소될 수 있을 겁니다. 최악은 중동지역 전면전으로 치닫는 경우인데요. 이 같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중간 시나리오입니다. 장기 국지전이 지속될 경우 충격 정도를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초기 몇 개월간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투자심리가 위축돼 미국 경제 회복시기가 더 늦춰질 수 있을 겁니다. 이 경우 미국 경제는 ‘V’자가 아니라 ‘L’자형 성장이 유력합니다.
▦정해왕= 골이 깊으면 반등도 클 것입니다. 일단 전쟁이 터졌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인임이 분명합니다. 며칠을 더 두고 봐야 겠지만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전쟁으로 미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주변국들이 더 큰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닐까요.
▦정해왕=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경우죠. 테러 이후 전세계 통화 중 유독 원화만 달러에 대해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입니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대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타격이 심할 수밖에 없고 외국인들의 자금이탈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싱가포르 같은 나라도 미국에 대해 IT 의존도가 높아 타격이 클 수 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대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습니다.
▦이경태= 전쟁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면 물론 1%대까지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정책적 대응은 내수진작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금리 인하의 경우 단시일 내에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재정지출 역시 너무 정치적인 이슈로 비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독일 같은 나라도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세계적인 공조에 동참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해왕= 동감합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전세계적으로 물류 이동이 줄어 수출이나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내수진작이 유일한 대응책입니다. 정부가 2조원의 추경 편성을 한다고 밝혔는데 여야 합의로 신속히 확정돼 연내에 유효하게 집행되야 할 것입니다.
금리 인하 효과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습니다.
▦정해왕= 금리 인하 효과가 없다고 하지만 금융비용 절감으로 기업들이 많은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원론처럼 금리 인하가 주가를 급등시키는 등의 가시적인 효과를 내지는 못하지만 조용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경기부양책이 기업들에게만 혜택을 부여해 기업구조조정을 후퇴시킨다는 지적도 높습니다. 가계에서는 금융소득이 줄어 소비를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정해왕= 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경기부양책을 동원하는 추세에서 우리만 고립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시그널을 줌으로써 심리적 안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경태= 금리인하나 재정지출 확대는 경기부양 보다는 경기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입니다.
구조조정을 해야 할 기업을 살리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구조조정이 안되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지 경기부양책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금리 하락이 소비를 줄인다고 했는데 반대 시각에서 보면 금리 인하가 결국 저축을 줄여 소비 성향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향후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소비가 더 줄어들었죠. 바람직한 소비를 늘리는 방안은 없을까요.
▦이경태= 소비진작을 위해 효과가 빠르고 확실한 것은 금리정책 보다는 재정정책입니다. 추경을 편성할 때도 내수진작 효과가 있는 내용으로 이뤄져야 할 겁니다.
▦정해왕= 소비가 최근에 그다지 나쁘지는 않습니다. 6월 소비가 줄어들다 7,8월에는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유흥적 소비는 막되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움츠러들어 돈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해소해야 합니다.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이 백화점식이고 전시성 정책이라는 지적이 높습니다.
▦정해왕= 지금이라도 정책 내용을 꼼꼼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전쟁이 장기화하는 최악의 경우 원자재, 특히 원유 수입에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한데요. 실기하지 않고 원유를 비축해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경태= 기업 투자심리를 부추기는 방안으로 기업규제 완화책이 나오고 있는데요. 일각에서 재벌개혁 후퇴라는 지적을 하지만 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지난 3년여간 대기업 환경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재벌개혁의 근본 취지는 경제력 집중 완화인데 이미 오너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많이 갖춰졌습니다. 소유구조도 많이 바뀌어 외국인이 5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도 많습니다.
기업간 차별화가 심화하고 있는 거죠. 지금 같은 규제는 잘하고 있는 기업에게 상당한 페널티가 될 겁니다. 너무 여론에 떠밀려 실기하지 말고 적절한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 테러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체와 해운업체 등에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정해왕=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해 각 국이 지원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법 테두리 내에서 지원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겁니다.
▦이경태= 우리나라만 지원을 하지 않으면 우리 기업만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겁니다. 단 미국 기업들은 먼저 철저한 자구노력을 한 뒤 지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선행돼야 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경제주체별로 전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말씀해 주시죠.
▦정해왕=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정부는 추경예산을 신속히 추진하고 추가금리 인하도 검토하는 등 내수진작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겁니다. 정책 내용 보다 시기가 중요한 만큼 실기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업은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는 만큼 틈새시장을 찾는데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들도 너무 불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쟁이 일방적인 공격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실 큰 영향이 없을 수 있습니다.
▦이경태= 나라가 어려운 시기인 만큼 경제 문제에 대해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테러 책임 규명을 일단 접어두고 국론을 모아 테러에 대한 대처에 협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업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차별성이 심화한 만큼 기업마다 대처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똑같이 투자를 줄이지 말고 여건에 따라 오히려 설비투자와 연구시설을 늘리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경제의 선진화라고 생각합니다.
■좌담 참석자
*정해왕(丁海旺) 한국금융연구원장 ▦1947년 대구 출생 ▦서울대 상대ㆍ미 뉴욕주립대 경영학 박사 ▦대신경제연구소 대표이사
*이경태(李景台)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1947년 경남 양산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ㆍ미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 ▦산업연구원 부원장
*사회 : 이상호(李相湖) 논설위원
정리=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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