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동료 논설위원 몇 명이 설악산 가을 한번 보자고 오래 벼르다 나선 길이다.
산사에 도착한 것이 밤 아홉시가 넘었다. 서울에서야 뉴스를 볼 초저녁일 텐데 절간의 밤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여장을 풀며 잡담을 나누다가 옆방 스님한테 야단맞았다. 초저녁잠이 없는 사람들이라 모두들 일어나 귓전을 때리는 계곡의 여울 소리를 좇아 어슬렁어슬렁 냇가로 갔다. 높은 능선에 에워 싸인 조그만 밤하늘은 별들이 총총했다.
■ 많이 이지러지긴 했지만, 한가위를 나흘 넘긴 열아흐레 달까지 휘영청 떠오르니 갑자기 신화의 세상에 온듯한 기분이었다.
모두들 어린애처럼 별자리를 뒤졌다. 누군가 북두칠성을 찾아내어 신기롭게 쳐다보다가 “일곱번째 별이 보이지 않는다” 며 눈을 비볐다.
나이 탓인가, 달빛 때문인가. 또 누군가 큰 발견이라도 한 듯 “은하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별자리 지식이 없으니 그 밤에 은하수를 찾는 것이 합당한지는 모르나,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 얼마 전 미국교수 두 명이 인공의 불빛에 의해 세계의 밤하늘이 얼마나 밝은가를 지도로 만들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전체 미국인 약 70%, 유럽연합 인구의 50%, 전세계인구의 20%가 그들이 사는 곳에서 밤하늘의 은하수를 볼 수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도시주변 밤하늘이 보름밤과 같이 밝아 육안으로 은하수를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들 과학자들은 '은하수의 멸종위기'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썼다.
■ 은하수의 멸종 지도는 바로 문명의 발달, 특히 경제발전 지도와 일치하고 있다고 한다. 대양 사막 산악은 어두운 색이지만, 경제활동이 활기찬 해안가나 평원은 밝은 색이다.
인간이 만든 빛에 가리어 12억 인구가 은하수를 볼 수 없게 됐다니 인간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밤의 서울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불야성이다.
과연 우리나라에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문명의 빛과 은하수의 빛과의 상관관계가 참 흥미롭다.
/김종수 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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