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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입국 참사' 증언 / 죽기전까지 문 열려고 안간힘 손가락마디 닳아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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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입국 참사' 증언 / 죽기전까지 문 열려고 안간힘 손가락마디 닳아없어

입력
200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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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마디가 아예 닳아 없어졌어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다한 것 같아요. 한국사람은 정말 끔찍해요….”9일 오전 전남 여수시 여수해경 조사실. 밀항하던 중국인 25명의 목숨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밀항 참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재중동포와 중국인 35명은 죄책감 보다는 악몽에 사로잡혀 치를 떨었다.

배 밑바닥에 갇힌 ‘동료’들의 외마디 비명과 수장되기 전 목격한 ‘닳아 없어진 손가락 마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검거된 밀입국 중국인들의 통역을 맡은 홍콩 출신 여수거주 중국인 주모(46ㆍ여)씨는 “조사를 받은 중국인들이 하나같이 ‘이제는 한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죽음의 냄새와 처참한 순간이 생각나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국인 유모(22ㆍ복건성 영강현 교강리)씨 등 재중동포와 중국인 60명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상하이 남쪽 닝보(寧坡)항을출항한 것은 지난 1일. 모두 푸젠(福建)성 시골 출신인 이들은 “한국에 가서 3년만 일하면 여생이 보장된다”는 꼬임에 속아 밀입국 모집책에게 1인당 6만5,000위안(약 1,000만원)씩을 건네고 밀항선(100톤급 중국 어선)에 몸을 실었다.

이 돈은 중국 농촌에서 최소 5년은 일해야 모을 수 있는 거금. 어려운 살림에 이만한 돈이 있을 리 없는 이들은 대부분 주변에서 고릿돈을 빌렸다.

출항 후 사흘이나 지났을까. “편하게 모셔 드리겠다”는 현지모집책의 약속은 공수표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 중국인은 “함께 밀항한 조선사람들은 밥을 다 챙겨 줬지만 중국인들은 일주일동안 쵸코파이 2개와 밥 1끼가 전부였다”며 “항의도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공해에서 한국선박(7태창호)로 옮겨탄 후 한국이 가까워지자 선원들은 이들을 사지(死地)로몰아넣기 시작했다. “경찰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며 중국인 26명을 2평 남짓한 배밑 그물창고에 가뒀다.

물탱크에 숨어 있었던 한 중국인은 “바로옆 그물창고에 들어간 중국인들이 숨이 막혀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치고 애원해도 선장이 ‘걸리면 모두 죽는다’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몇시간째 그물창고에서 아우성조차 들리지 않아 물탱크안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치자, 선원들은 그제서야 문을 열었으나 모두 질식사한 뒤였다. 한중국인은 “물탱크에 있던 재중동포와 중국인들 도 선원들이 5분만 늦게 문을 열었으면 모두 죽었을 것”이라며 치를 떨었다.

이들의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배가 “시신을 버려야한다”며 생존자들을 여수시 대경도 선착장에 내려놓고 어디론가 떠났을 때 이들은 공포감에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한편 여수해경은 이번밀입국의 책임자로 추정되는 국내 알선책 여모(53)씨의 행방과 배후조직을 캐고 있다.

또 생존 밀입국자들로부터 중국에서 50세 가량의 김모(여)씨가재중동포 11명을 모집하고 30,40대 남자 중국인 아모씨가 나머지 중국인을 모집했다는 진술을 확보, 중국대사관과 인터폴에 명단을 통보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해경은 밀입국 운반선7태창호 선장 이모(43)씨와 선원 등 8명에 대해서는 중과실치사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양준호기자

jhy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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