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9일은 한글날이다. 1940년 7월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의 정인지 서문에 ‘정통(正統) 십일년 구월 상한(上澣)’이라는 기록이 있어서, 훈민정음이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반포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0월9일은 그 해 음력 9월 상순의 마지막날인 9월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다. 이 날을 한글날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1946년이지만, 조선어연구회가 음력 9월29일을 가갸날로 선포한 것이 1926년이므로 한글날의 역사도 벌써 75년이 됐다.
문자의 제정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민족은 지구 위에서 한국인들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꼭 한글에 대한 축복이랄 수는 없다. 이 유별난 관행에는 우리 언어와 문자가 겪어온 시련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을 둘러싼 신화가 둘 있다. 첫째는 한글 창제를 세종의 애민정신과 관련시키는 신화다. 그러나 한글의 창제가 크게 보면 백성세계의 의식 성장과 정권 측의 민중통제 의지가 맞물려 이뤄졌다는 것, 구체적으로는 한국 한자음을 되도록 중국 음에 가깝게 고치겠다는 욕심을 품은 세종이, 정비된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다음,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신화가 있다. 물론 한글은 우수하다. 특히 제자원리가 그렇다. 그러나 한글이 로마문자보다 훨씬 나은 글자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한글이 로마문자보다 2,000년쯤 뒤에 나타난 글자라는 것을 잊어서는안 된다.
다시 말해, 그 2,000년동안 인류가 쌓은 지식이 한글의 체계에 반영됐다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게다가 한글은 본질적으로 로마문자같은 음소문자이면서도 음절단위로 네모지게 모아 쓰고 있어서, 실제의 운용에서는 일본의 가나 같은 음절문자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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