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9일 영수회담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라는 외부 여건이 만들어준(혹은 이를 이용한) 제한적 성격의 대좌다. 청와대측은 8일 오전 ‘불쑥’ 영수회담을 제의했고, 한나라당도 ‘못 하겠다는 명분이 없어’(한 핵심 당직자) 이를 수락했다.올 1월 칼날대화 끝에 결렬된 청와대 회동을 마지막으로 여야 영수회담은 제의와 역 제의만 오가는 엇박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장 9월에만 해도 이 총재가 영수회담 수용의사를 밝힌 뒤 각종 게이트가 잇달아 터지는 바람에 ‘없던 일’이 돼버렸다.
영수회담을 통해 양측이 챙길 이득은 물론 있다. 김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관련한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냄으로써 안정적 국정운영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이 총재는 국정운영 파트너로서의 위치 확인과 함께 YS-JP 회동으로 분산될지 모를 정치의 중심 화두를 본류로 되돌려 놓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회담의 의제를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국한했다는 사실은 이번 회동이 갖는 이 같은 한정적 효용성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아프간 사태 이외의 다른 문제는 논의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럴 이유도 없다”면서 “의제 준비가 되지 않은데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선을 그었다.
따라서 9일 회담은 이용호게이트 등을 둘러싸고 형성된 여야의 첨예한 대치전선을 눅이는 대화정국 복원의 계기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홍희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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