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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문인 10대시절 습작모음集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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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문인 10대시절 습작모음集 출간

입력
2001.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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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순결하고 가슴은 충만했던 푸른노래의 그시절…그런 날들이 있었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읽으면서 내면의 악(惡)과 처음으로 마주했던 때.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는 ‘날개’의 한 구절에, 마음 속으로 품었던 희망과 야심을 깊이 숨기고 싶었던 한때. ‘껍데기는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시인의 외침이 귀에서 떠나지 않았던 때.

그때 시를 읊었던 그들의 입술은 아름다웠고, 소설을 썼던 그들의 손길은 비장했다.

“문학은 밥이었고, 법이었고, 멋이었다.”

생애에서 가장 순결했던 한 순간, 문학이 세상을 구원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세상을 다 가지겠다”며 광고 카피를 구호처럼 외치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이런 문학에의 믿음은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오래된 얘기가 돼버린 걸까.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나를 찾아왔다’와‘내가 그 나이였을 때 소설이 나를 찾아왔다’(여백 발행)는 우리 작가들이 10대에 쓴 습작의 모음이다.

정식 등단하기전 고교 백일장이나 ‘학원’ 지 등의 문학상 공모에 출품한 작품들이다.

그들은 이제 우리 문단의 원로ㆍ중진 혹은 중견 문인이 되었다. 이 습작들에 그들 문학의 원형이 담겨 있다.

“사랑과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싶었다. 아름다운 반항과 거대한 역사 같은 것에도 눈을 뜨고 싶었다. 무언가를 남몰래 쓰기 시작했다. 시작법을 따로 배울 필요조차 없었다. 가슴 속에서 출렁이는 푸른 노래를 가만히 언어로 옮겨 담으면 그것이 바로 시가 되었다.”

김형영 시인은 ‘시가 나를 찾아왔다’에 붙인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슴 가슴 마다엔/ 혈서처럼 구겨진 하소연이 있고/ 눈물 대신 흘려 보는/ 애틋한 가락임을 누가 알랴.’

고교 2년생이었던 마종기 시인은 가야금을 시제로 삼아 이 같은 시를 썼다. 1950~70년대 문학을 지망하는 중고생의 작품 발표무대로 각광받았던 잡지‘학원’의1956년 학원문학상 수상작이다.

평론가 김병익씨도 젊은 날에는 시인을 꿈꿨다. 대전고 2년 때 ‘학원’지에 발표한 시 ‘정야(靜夜)’는“고요한 밤에는 오히려 가슴이 무서움에 떨리기도 한다는 느낌이 시 속에서 배어나는 듯 하다”는 평을 받았다.

소설가 이제하씨가 고교 1년때 지은 시 ‘청솔 그늘에 앉아’는 시인 유경환씨와의 사연이 얽힌 작품이다. 마산에서 고교를 다니던 그는 ‘학원’지에 사진소설의 모델로 나왔던 서울 학생 유경환을 특히 동경했다.

유경환 시인은 당시 ‘학원’에 투고한 이씨의 소설을 보고 편지와 사진을 보내왔다 이씨는 화답으로 이 시를 썼고 학원문학상(1954)을 수상했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랏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다/…/아아, 밀물처럼 온 몸을 스며 흐르는/ 노곤한 그리움이여’ 한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오직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감했던 젊은이들이 남긴 풋풋한 감성의 노래는 우리 현대시사의 주옥 같은 명편으로 꼽힌다.

소설가 김승옥씨는 1958년‘학원’지에‘서점 풍경’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김학길’이라는 필명으로 쓴 작품은 서점에서 ‘법학통론’과 ‘문학개론’ 같은 책을 유식한 척 뒤적이다가 결국 영어 참고서를 사고 만다는 유머러스한 내용이다.

짤막한 분량이지만 속도감 있고 세련된 문체에서 몇 년 뒤 한국문단에 ‘감수성의혁명’을 일으켰던 김승옥 소설의 실마리가 보인다.

소설가 황석영씨와 최인호씨는 이미 고교생 때 작가로서의 이름을 화려하게 알렸다.

황 씨가 경복고 2년 때 발표한 소설 ‘입석부근’은 ‘사상계’ 신인문학상(1962) 입선작으로 선정됐다.

최씨는 서울고 2년 때 한국일보신 춘문예에 출품한 단편 ‘벽구멍으로’가 입선작으로 뽑혔다. 시상식 때 까까머리 학생이 나타나자 참석자들이 기겁을 했다는게 지금까지 전해오는 뒷얘기다.

비록 서툴렀을지라도 세상과 자신의 내면을 향한 감출 수 없는 뜨거운 정열로 시를 쓰고 소설을 써봤던 때.

“그러니까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라고 파블로 네루다가 노래했던 날들이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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