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멸망하지 않으려면 평화로워야 합니다. 가장 우선해야 하는 가치는 평화입니다.”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보복 공습이 시작된 8일 조영식(趙永植ㆍ80)경희학원장(경희학원 설립자)은 무척 안타까워했다.
미래학자로서 평생 ‘평화’를 화두로 삼아 연구해 온 이 원로 학자는 “앞으로는 대전(大戰)보다는 뜻하지 않은 국지전이 세계를 심각한 혼란에 빠뜨리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조 학원장은 유엔이 ‘세계평화의날’ 을 제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최근 ‘세계 평화의 날’ 20주년 기념행사를 성황리에 마친 그는 할 말이 많았다.
-전세계가 우려했던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인류는 ‘전쟁의 역사’와‘후회의 역사’를 반복해 왔습니다. 지금의 세계 체제와 역사규범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습니다. 3차 핵대전은 아니더라도 테러 등 비정상적인 얼굴 없는 전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번 자살테러는 끔찍했습니다만, 테러리스트에 대한 미국의 현명한 대처가 인류를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현재의 세계체제와 역사규범이 어떻다는 말씀입니까.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해 놓고 배타주의, 패권주의, 계급주의, 근본주의적 민주주의를 흉내내고 있습니다. 만민의 자유와 평등, 공영을 추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해야 합니다. 평화는 그 같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대전제입니다.”
-그러한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평화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말하기는 너무 길 것 같고…. 간단히 말하면 인간중심사회, 문화사관에 입각한 문화규범사회, 보편적 민주주의 사회, 대소국의 동권(同權)과 공존공영이 보장되는 지구공동사회, 팍스(Pax) 유엔의 평화사회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런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작업을 해왔습니까.
“저는 일본 제국주의 말기 학도병의 몸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때부터 진정으로 평화가 필요하다고 깨닫고 오늘날까지 천착하고 있습니다. 세계대학총장회 등 지구촌의 지식인과 지도자들과 함께 평화를 호소하는 한편,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해 평화를 국제적인 과제로 함께 생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유엔으로 하여금 ‘세계평화의 날’(9월셋째주 화요일)과 ‘세계평화의 해’(1986년), ‘문명간의 대화의 해’를 제정케 한 것도 큰 성과입니다. 지성인이 앞장서서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저의 호소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 주셔서 국제적인 평화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미소간 핵전쟁의 위기 속에서 화해협력의 시대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평화운동이 큰 원동력이 됐습니다.”
-이번 전쟁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교전쟁, 문명전쟁의 양상을 띨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종교적 근본주의는 정말 우려할 만합니다. 종교적 성전(聖戰)으로 규정만 하면 목숨을 아까워 하지 않는 모습, 정말 기가 막히고 무서운 현상입니다. 자비, 착한 마음, 옳은 정신을 갖고 함께 살아가는 종교가 돼야 합니다.종교적 근본주의는 시정돼야 합니다.”
-선생님이 제안해 채택된 유엔 세계평화의 날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달 거행한 기념식은 어땠습니까.
“우연히 테러 사태가 겹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오히려 행사가 시의적절하게 거행됐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더욱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치가도 아닌 교육자로서 굳이 이 같은 평화 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따지자면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암울한 현실은 잘못된 교육이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식만 강조하다 보니까 패륜아가 생기는 것입니다. 좋은 인재를 키워야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평범한 깨달음이 더욱더 이 작업에 매진하게 만듭니다.
지구적 평화는 훌륭한 인재를 키우고, 미래 인류사회의 이상을 교육할 때 더욱 가까이 다가옵니다.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 일을 할 생각입니다.”
●세계평화의 날
유엔은 1981년 11월 30일 제36차 유엔총회에서 매년 9월 셋째주 화요일을 ‘세계평화의 날’로 제정, 공표했다.
이는 국제적 지식인, 지도자들과 교류를 해 온 조영식 경희학원장이 주창해 유엔이 받아들인 것이다.
총회에 앞서 6월 코스타리카 산호세에서 세계대학총장회 제6차 총회가 개최됐는데 당시 의장을 맡았던 조 학원장이 기조연설을 통해 평화의 날 제정을 건의했다.
당시 한국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코스타리카 정부의 협력을얻어 안건을 유엔에 제출, 채택됐다.
세계평화의 날 기념식은 국제적으로 거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경희대와 유엔한국협회가 매년 공동주최하고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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