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본 투 킬’(감독 장현수)이란 영화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제작비(총 20억 원)에, 청소년들의 우상인 정우성 심은하가 주연을 맡은액션물이었다. 그러나 흥행에 참패했다. 물론 완성도에 문제가 있었지만, 몇몇 잔혹한 장면으로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극장을 찾은 수많은 고교생들이 발길을 돌렸다.제작사인 현진영화사는 눈물을 흘렸고, 5년 동안 후유증을 앓았다. 그리고 올추석 ‘조폭 마누라’(감독 조진규)로 보란 듯이 ‘대박’을터뜨렸다. 개봉 9일 만에 관람객이 200만 명을 넘었다. ‘친구’의기록과 맞먹는다. 충무로에서는 이 같은 흥행 이유의 하나로 ‘15세 관람가’란 등급 혜택을 꼽고 있다. 제작사에 의하면 전체 관객의20% 정도가 고교생이라고 하니, 억지 주장도 아니다.
그러나 작품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이 영화는 누가 보더라도 지나치게 폭력적이며선정적이고 저급한 대사로 일관하고 있다. 아무리 조폭 영화의 속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X같은 놈’ ‘X대가리’ 같은 욕설이 여과 없이 난무하고, 임신한 여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 오럴 섹스를 묘사하는 장면 등 고교생 아이를 데리고간 부모가 깜짝 놀랄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코믹함이 그것들을상쇄한다”며 15세 등급을 주었다 한다. 혹시 그것이 어느 정도 예견됐던 대로 ‘등급보류’ 권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을 의식한 것이라면 착각이 아닐 수 없다. 헌재의 판결은 성인물의 상영을 금지하지 말라는것이지, 기존 등급을 하향조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대현 문화과학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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