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조기진단 시대가 열리고 있다.그 동안 일부 대형 종합병원에만 설치돼 있던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ㆍPositronEmission Tomography) 기기를 중소 종합병원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암 진단에 있어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첨단기기 PET는 국내에 1994년 6월 서울대병원이 처음 도입했다.
이후 삼성서울병원, 원자력병원, 아주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중앙병원, 국립암센터 등 6개 대형 종합병원이 설치했다.
최근에는 중소 종합병원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의 강남e병원이 이 기기를 설치해 전국에 모두 8개 병원이 PET를 보유하게 됐다.
강남e병원 방진건 이사장은 “환자들에게 가까이 있는 중소 종합병원이 PET 기기를 도입함에 따라 조기 암 진단시대를 좀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0년 사망원인 조사에 따르면, 10년간 암으로 숨진 사람은 10% 이상 증가했다.
의학계는 조기 암 진단 시스템이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PET 진단이란 포도당과 같은 인체의 기본대사물질에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붙여 특수 방사성 의약품으로 만든 다음, 이를 인체에 주입해 암세포를 영상화하는 첨단 진단 기술이다. 방사성의약품이 주입된 환자가 PET스캐너에 한 시간 정도 누워 있으면 PET기기가 온 몸을 촬영해 암 부위를 찾아낸다.
암 조직이 정상 조직보다 포도당을 훨씬 많이 소모한다는 데 착안, 포도당과 함께 방사성 동위원소를체내에 주입하면 포도당 소비량이 많은 부위가 컴퓨터 영상에 나타나도록 한 것이다.
PET는 각종 암의 진단뿐만 아니라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의 조기 진단, 운동장애 질환의 감별, 관상동맥질환의 진단, 심근경색증의 회복 가능 심근 부위 검출 등 다방면에 활용되고 있다.
기존의 X선 촬영이나 초음파, CT(컴퓨터 단층 촬영) MRI(자기공명 영상 촬영) 등은 우리 몸의 내부에 만들어지는 암세포나 종양의 해부학적 모양을 영상에 기록하는 기법이다.
따라서 이런 방법들은 1㎝ 이하의 아주 미세한 암세포나 종양은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양성인지 악성인지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반면 PET를 이용하면 기존의 방식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5㎜ 크기의 미세 암세포나 종양 조직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암의 전이와 재발 여부, 항암제 투여 효과 등을 확인하면서 치료를 진행할 수도 있다. 또한 암이나 종양이 처음 발생한 부위를 추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정준기 교수팀은 재발이 의심되는 갑상선암 환자 57명에게 포도당 유도체(FDG) PET를 시행해 전체 갑상선암 재발 환자 33명 중 31명(94%)을 찾아냈다.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이명철 교수는 “X선이나CT, MRI는 인체 내 구조를 해부학적으로 영상화하는 것이지만 PET는 해부학적 변화가 오기 전, 즉 질병이 발생해 생화학적 변화가 시작될 때부터 이상 여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빨리 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PET가 암 조기 진단 등에 획기적인 기기임에는 분명하지만, 한 번 진단을 받는 데 비용이 50만~100만 원이나 든다는 게 단점이다.
기기 자체의 가격도 수십억원대에 이르러아직 지방이나 중소 종합병원에서는 설치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안에 부산대병원이 설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암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서 PET의 유용성을 인식하고 이미 활용이 일반화하고 있다. 미국에는 300여 개, 독일에는 85개의 PET스캐너가 보급돼있고 PET에 이용되는 방사성의약품(FDG)도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공급하고 있다.
미국은 도입 초기에는 PET를 폐암, 흑색종, 림프종 등 일부 질환에만 인정했다가 현재는 거의 모든 종양의 진단에 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에 PET 사용이 2배 이상 증가한 것은 이런 국가적인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울대병원 정 교수는 “암 치료의 성패는 조기 발견과 전이 여부 판별이 관건인 만큼 PET를 활용한 첨단진단 혜택이 전 국민에게 저렴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말했다.
/권대익기자dkwon@hk.co.kr
■기고 / 이명철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1992년 150곳에 불과했던 전세계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센터가 지난 해에는 2배 이상 늘어난300개 기관에 도입됐다.
올 9월 말 현재에는 400여 기관에서 PET기기가 운영되고 있으며 5년 내 PET기기가 현재보다 3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92년 60개에 불과했던 PET센터가 지난해 176개소로 늘어났으며 올해에는 모두 194개 병원에서 이용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암 등 각종 질환의 조기 진단을 위해서 PET 기술을 더욱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진단영상센터나 종합영상센터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PET 검진을 실시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현재 7개 영상센터에 3~5대의 PET기기를 설치ㆍ운영중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PET기기가 선진국에서 폭 넓게 활용되고 있는 것은 의료보험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인정이 극히 까다로운 미국에서는 불과 6년 전인 1995년 5월에 처음으로 폐암 등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보험 급여가 인정됐다가 대장암, 임파종,경부암, 식도암, 흑색종 등 다른 많은 질환에도 보험 인정 범위를 점차 확대됐다.
우리나라의 현재 PET 촬영 수가는 고가격의 기기 때문에 50만~100만 원을 받고 있지만(참고로 미국에서는건당 1,500~2,000달러의 수가를 받고 있다) 원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높은 의료 경비가 드는 PET기기가 활용되기 위해서는 의료보험에서 인정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의ㆍ과학적 연구 분석과 정책적 홍보가 필수적이다.
정부도 PET의 임상ㆍ학문적 중요성을 인식함에 따라 이 기기를 전 국민에게 활용시키는 방안으로 ‘원자력 중장기 사업’을 통해 의학용 PET의 주요 기기인 사이크로트론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학기술부는 전국에 5군데 정도의 권역별 PET센터 혹은 동위원소 생산, 분배 센터를 운용해 현재 서울에만 집중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을 모든 국민에게 첨단 지역의료 혜택을 주기로 했다.
전 세계 10대 원자력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PET기술의 선진화 및 확산을 위해서는 관련 연구 개발, 기술 향상을위한 국가 정책적 지원도 중요하다.
PET 기술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학, 화학, 물리, 약학, 전자 등 다학제간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에핵의학 분야 의료인력뿐만 아니라 관련 전문 인력의 균형적인 양성을 위해 협동연구, 대학원 과정 설립 및 유관 기관 설립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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